비상경제대책위원회가 마감을 하루 앞둔 13일 구조조정계획의 제출을 독촉
하자 30대그룹에 비상이 걸렸다.

20대 이하의 하위권 그룹들은 아직 방향도 확정짓지 못한 상태에서 실천
계획의 명문화가 쉬운 일이 아니어서다.

10대그룹의 경우는 새정부측의 기대치가 높아 수위조절이 고민이다.

당초 기업들은 마감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구조조정 계획을 마련할 방침
이었다.

지난 9일 전경련 30대그룹 기조실운영위원회에 초청된 이헌재 비대위
실무기획단장이 "실천이 중요한 만큼 기간내에 제출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는 요지의 발언을 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대위가 이날 금호그룹외에는 제출하는 기업이 없자 "미제출
기업의 명단을 공개하겠다"고 경고하면서 분위기는 1백80도 달라졌다.

일단 마감은 지키고 보자는 방향을 잡은 것이다.

각 그룹은 이에 따라 지난 6일 김대중 대통령당선자와 30대그룹 총수와의
오찬회동에서 합의된 내용을 골간으로 가닥을 잡아 13일 심야까지 계획작성
에 대말렸다.

특히 지나치게 튀는 계획을 내놓을 경우 다른 기업에 부담이 될 가능성이
큰 만큼 눈치작전도 심하게 벌이는 모습이었다.

<> 제출은 하되 발표는 안한다

각 그룹들은 비대위가 당초 약속대로 비밀을 철저히 지켜 줘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혹시라도 매각대상 기업에 대한 정보가 새나갈 경우 매각협상 자체가
어려워질 뿐만 아니라 해당회사 임직원의 동요에 따른 부작용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다음주초에 포괄적인 구조조정 계획을 공식 발표키로 한
대우그룹을 제외한 대부분의 그룹들은 제출은 하되 언론에 발표는 않기로
했다.

일부 그룹에서는 또 핵심적인 중요사항에 대해서는 비대위측에도 구조조정
계획서 제출과는 별도로 구두로만 보고키로 했다.

<> 어떤 내용이 담기나

구조조정 계획의 골간은 <>기업경영의 투명성제고 <>소유구조 선진화
<>재무구조 개선 등이다.

특히 최근 여론을 타고 있는 기조실 및 비서실의 구조조정과 사외이사제
도입 등 경영투명성 제고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삼성그룹은 이미 지난달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한 만큼 비대위에는 그룹회장
비서실의 구조조정 계획만을 별도로 제출키로 했다.

삼성은 이건희 회장이 이번 정기주총에서 삼성물산이나 삼성전자 등 주력
계열사의 대표를 맡을 경우 그룹비서실의 기능을 주력사들로 분산배치하는
방안을 마련한 것으로 전해졌다.

SK그룹은 일부 계열사의 정리계획을 포함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기조실은 올들어 이미 6개부서 1백명의 조직을 4개팀 56명으로 줄인 만큼
별도의 정리계획은 담지 않기로 했다.

쌍용그룹은 기존에 추진해온 구조조정 계획을 가속화한다는 내용에 중점을
뒀다.

이미 매각키로 한 용평리조트 은화삼CC 등이 안팔리는 상황에서 새로운
계획 자체가 의미가 없어서다.

기조실은 축소해 그 기능의 일부를 모기업인 쌍용양회에서 대행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일부 그룹에서는 지배주주의 책임경영 강화를 위해 총수들이 대표를 맡을
주력계열사 리스트를 명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대부분이 기업들이 경영투명성 제고를 위한 사외이사제 도입 등
비대위측의 요구를 대폭 수용한 계획안을 짠 것으로 알려졌다.

<> 기업들의 고민

기업이 당연히 알아서 할 일을 외부에서 간섭받아야 한다는데 대해 기업들
의 불만은 많은 편이다.

특히 갑자기 초청받아 지난 6일 김당선자측과 오찬을 했던 6대 이하
그룹들은 시일이 너무 촉박해 이후 1주일을 꼬빡 계획작성에만 매달렸다.

1주일여만에 구조조정 계획을 완결짓는 것이 물리적으로도 힘들었지만
기업의 경영계획을 숙제하듯이 만들어야 하는 실정에 대한 불만이 더 많았다.

특히 30대그룹에 신규 진입한 그룹들과 30대그룹이 아닌데도 오찬회동에
초청됐던 일부 그룹들은 형평의 문제도 제기하고 있다.

모그룹의 경우는 그래서 기존 30대그룹과 달리 상호보증해소 시한을 반드시
유예해 줘야 한다는 건의까지 구조조정계획서에 담기로 했다.

<권영설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