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뺀다"

요즘 미국 재계의 최고경영자(CEO) 선임경향을 설명하는 데 이보다 더
적당한 우리 속담은 없을 듯하다.

사외 인사를 최고경영자로 영입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는 것.

미시간주립대학의 유진 제닝스 명예교수(경영학)가 90년대 들어
최고경영자를 교체한 주요기업 3백69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조사대상기업의 3분의 1이 사외인사를 최고경영자에 선임했다.

또 하버드경영대학이 주요기업 8백39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7%가
외부에서 최고경영자를 모셔왔다.

놀라운 점은 전혀 다른 업종에 종사하던 사람을 최고경영자로 영입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생겨나고 있다는 것.

예를 들어 델타항공의 레오 무린사장은 전직 은행 임원이다.

컴퓨터업체인 유니시스의 최고경영자 로렌스 웨인바흐는 전직회계사이며
출판업체인 타임스미러의 최고경영자 마크 윌레스는 전직 재무관리 교수다.

불과 10년전까지만해도 이처럼 외부에서 최고경영자를 영입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사내에서 잔뼈가 굵은 임직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릴 수 있는 데다 회사
내부 사정에 어두운 외부경영자가 자칫 큰 실수를 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90년대들어 이같은 고정관념이 깨지고 있다.

최고경영자가 갖추어야할 덕목은 한 분야의 전문지식이 아니라 강력한
리더십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어서다.

이같은 현상을 반영, 미국의 월스트리트 저널지(지)는 "90년대들어 기업
규모가 갈수록 커지고 있고 경쟁은 심해지고 있다"며 "한분야에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경영자보다는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경영자가
절실해졌다"고 최근 보도했다.

당분간 "굴러온 돌"을 선호하는 현상은 계속될 전망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외부에서 최고경영자를 영입해 좋은 결과를 얻은
회사들이 늘어나고 있는데다 최고경영자 선임권을 가지고 있는 이사회가
리더십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있다"며 외부영입을 부추기고 있다.

< 조성근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