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때아닌 적포도주 열풍이 불고 있다.

이 열풍의 직접적인 원인은 TV드라마와 영화로 제작돼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실락원"의 한 장면.

불륜관계인 남녀 주인공이 적포도주에 독약을 타 마시며 정사를 기도한
마지막 장면이 일본 소비자들에게 강하게 "어필"했기때문이다.

심각한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일본의 전체 포도주 판매량은
전년대비 27% 늘어났다.

특히 적포도주의 활약이 돋보였다.

일본에서는 전통적으로 백포도주가 강세를 보여왔다.

그러나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판매량에 있어서 적포도주가 백포도주를
앞질렀다.

말할 것도 없이 "실락원신드롬"때문이다.

이를 반영하듯 일본 최대 광고회사인 덴쓰사는 적포도주를 97년 최대
히트상품으로 선정했다.

올들어서도 적포도주 열기는 사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프랑스 보르도산 적포도주의 경우 지난 1월 판매량이 전년동기대비 3배이상
늘어났다.

반면 백포도주인 "새블리"는 겨우 평년수준을 유지했다.

실락원신드롬외 적포도주가 건강에 좋다는 연구결과가 최근 잇달아 나온
것도 이같은 열풍에 한 몫한 것으로 분석된다.

흔히 "프랑스의 패러독스(역설)"라 불리는 이들 연구결과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프랑스인들은 기름진 음식을 많이 섭취하는데도 불구하고 심장
질환 발생률은 오히려 매우 낮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적포도주에 들어있는 특정 천연성분이 심장병을 예방하기 때문이라는 것.

아무튼 소름이 오싹끼치는 충격적인 자살장면에 등장했던 적포도주에
오히려 일본 소비자들이 흠뻑 빠져드는 것은 논리적으론 설명이 잘 안되는
일본의 여러 사회현상중 하나로 풀이해야 할 듯하다.

< 김수찬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