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구조조정의 고된 길을 가고 있다.

구조조정이란 경제 각부문이 감량내핍을 통해 거품을 제거하는 것이다.

이것은 실질임금을 내려서 고비용을 다스리는 일, 소비와 욕구를 줄여서
생활수준을 내리는 일, 기업이 규모를 줄이고 군살을 빼서 합리화하는 일
등 세가지로 요약해 볼수 있다.

그러면 이러한 내용의 구조조정을 실행하는 구체적인 수단방법은 무엇인가.

거기에는 두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불황(또는 실업)이며 다른 하나는 인플레이다.

이 두개를 합한 것이 스태그플레이션이다.

불황이 되고 실업이 늘면 임금이 억제되고 소비가 줄며 기업의 감량이
불가피하다.

인플레가 돼도 실질임금이 줄고 소비가 깎이며 기업은 원가상승 때문에
허리띠를 졸라매게 되는 것과 같은 효과가 생긴다.

그렇다면 불황과 실업이라는 이 두가지 방법간의 관계는 어떤가.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현재의 인플레가 과수요로 인한 수요 인플레가
아니라 원가상승으로 인한 비용 인플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한다.

현재의 인플레는 수요가 오히려 침체된 가운데 환율상승과 금리상승이
주도하고 있다.

올해 환율이 달러당 1천3백원을 유지한다 하더라도 수입원가는 50%이상
오르는 것이다.

금리는 그동안 매출액에 대한 금리부담 비율이 6%였는데 올해는 10%가
넘을 것이니 이것 또한 고스란히 원가상승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래서 환율요인과 금리요인만을 합하더라도 올해 약 15%의 비용
인플레요인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부분은 인위적으로 내릴수 없는 인플레 요인이다.

예컨대 환율이 50%가 올랐는데 수입 석유값을 그만큼 올리지 못하도록
한다면 정유회사는 적자가 쌓여 결국 도산할 것 아닌가.

그래서 이러한 비용 인플레에서는 실업과 인플레가 서로 상충관계에
있다는 특징이 있다.

다시 말하면 인플레를 억제하려 하면 불황과 실업이 더 깊어지는
상관관계가 작동하며, 인플레도 다스리고 실업도 줄이는 특효약은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실업과 인플레를 각각 어느 정도로 배합해서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이다.

우선 불황과 실업쪽을 살펴 보기로 하자.

지금까지 크고 작은 수 많은 기업이 쓰러졌다.

그런데 내수가 계속 줄어들어 물건이 안팔리고 자금줄은 막히고 금리가
30%에 이르고 있으니 이 속에서 살아남을 기업이 어디 있는가.

이 상황이 오래 지속된다면 적자기업 흑자기업 가릴것 없이 연쇄도산이
불가피할 것이다.

여기서 터져 나오는 실업은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나라 실업자는 지난해말 현재 60만명으로 3%라고 하는데 올해
1백50만명에 이르러 실업률이 8%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프랑스 독일 스페인 등 유럽 국가들은 지금 실업률이 12%에 이르고 있고
한때 20%에 이른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나라에서는 사회보장이 돼있고 재훈련에 의한 재취업의 길이
열려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현재 상황은 그러한 장치가 미흡할 뿐더러 한꺼번에
쏟아지는 실업 사태이기 때문에 재취업의 길은 생각조차 할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실업은 "굶는 실업"이며 이런 점에서 다른 나라와는
실업률 숫자로 비교할수 없는 심각한 상황이어서 올해 인플레는 필요악이라
할 것이다.

그러면 인플레 문제는 어떤가.

인플레가 월급봉투를 가볍게 하고 생활수준을 압박하는 것이지만 우리의
경제위기를 치유시켜주는 자동 조정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올해의 인플레를 필요악이라 본 것이다.

다시 말해서 고임금과 과소비로 경쟁력이 약화되어 국제수지가 적자가
됐고, 그래서 외환위기가 오고 환율이 올랐으며, 환율이 급등하여 인플레가
생겼고, 인플레 때문에 실질임금이 내리고 소비가 줄어 경쟁력이 되살아나고,
그래서 국제수지가 흑자로 돌아서 경제위기가 해소되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특히 유의할 점은 올해의 비용 인플레는 1회성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매년 누적되는 것이 아니고 환율과 금리가 안정되면 바로
없어지는, 그래서 그 해악은 올해에 한정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올해 원가상승으로 인한 인플레부분 만큼은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것이다.

올해 IMF와의 협약에서 물가목표가 당초 5%에서 9%로 수정된바 있다.

정부는 이것을 지키도록 성실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나 이 목표에
무리하게 집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상황의 추이에 따라서는 10% 이상의 인플레를 받아들여야 할 것이며
그러한 방향에서 고용과 물가의 조화를 추구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