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당선자가 17일 경우에 따라서는 사실상의 그룹 해체를 초래할
수도 있는 강도높은 재계개혁을 주문하자 재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특히 김당선자가 비상경제대책위원회로부터 30대그룹의 구조조정계획을
보고받은 다음날 이런 발언을 함에 따라 재계의 개혁동참이 미흡하다는
평가가 실렸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각 그룹들은 당혹해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재계는 전국경제인연합회 등을 통해 김당선자 발언의 진의
파악에 나서는 한편 계열사 축소 등이 장기적인 과제로 추진돼야 한다는
입장을 정부에 전달키로 했다.

현대그룹은 김당선자의 이날 발언을 핵심업종 위주로 그룹의 구조조정을
가속화하라는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종기실 관계자는 "이미 재무구조가 취약한 회사나 한계계열사의 경우는
매각 방침을 정해 놓은 상태"라며 이 과정에서 그룹의 경영구조가
자연스럽게 주력사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그룹 비서실 관계자는 "반도체 등 경쟁력있는 3~4개 업종을 주력사업
으로 추진키로 하고 주력업종의 최종확정을 위해 외부에 용역을 준 상태"
라며 이미 김당선자의 의지와 부합되는 방향으로 구조조정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LG그룹은 김당선자가 "3~4개 내지 5~6개 기업"을 언급한 것에 대해 "자신
있는 주력업종을 중심으로 운영하라는 취지일 것"이라며 "내년까지 상호
지급보증을 완전 해소하고 한계사업은 정리하는 등 이미 발표한 구조조정안
을 시행해 가다 보면 자연스레 계열사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대우그룹은 "세계경영" 차원에서 개도국에서 다양한 해외사업을 벌이고
있어 단시일내에 주력업종을 줄이기는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룹 관계자는 "그러나 국내 산업의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계열사 축소
방안에 대해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선경그룹의 경우도 이미 그룹의 사업영역을 에너지 및 화학, 정보통신 등을
중심으로 재편해 오고 있는 과정이라며 장기적으로 계열사 통폐합을 통해
주력업종 중심의 사업구조를 가져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각 그룹들은 그러나 주거래은행들이 이달말로 예정된 재무구조개선약정을
맺을 때 계열사 축소 계획을 요구할 것이 분명해 기조실 차원에서 주력사
중심의 통폐합 계획을 작성키로 했다.

하지만 단시일내에 계열사를 획기적으로 축소할 뾰족한 방법이 없어 애를
태우고 있는 실정이다.

모그룹 관계자는 "정부의 대기업정책에 그룹들이 적극적으로 동참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면서도 "비주력으로 분류돼 정리될 회사의 경우는 엄청난
부작용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김당선자가 기업들의 장기적인 구조조정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며 "실제로 적게는 10여개 많게는 50여개의 계열사를 갖고
있는 대기업그룹들이 단시일내에 5~6개 계열사로 줄이기는 불가능할 것"
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같은 장기계획이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기업의 통폐합이나
사업분할 등 원할한 구조조정을 가로막고 있는 각종 제도를 정비하는 조치가
선행돼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권영설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