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부가 잇달아 강경한 재계 개혁정책을 밀어붙이면서 그렇지 않아도
생사의 기로에 서있는 대기업그룹의 경영활동이 마비될 위기에 처했다.

연초 "빅딜(그룹간 사업맞교환)"로 가시화된 재계 개혁정책과 관련한
새정부측의 요구사항이 지나치게 많은데다 일관성마저 없어 위기관리와
수출확대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기업으로선 너무 많은 힘을 허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19일 재계에 따르면 차입경영축소와 투명성확보등 본질적 사안 외에도
빅딜 개인재산출자 기조실 폐지 등으로 이어져온 새정부측의 대기업그룹에
대한 개혁요구는 지난 14일 비대위가 30대그룹 구조조정계획을 접수한후
더 강화되는 추세다.

30대그룹들은 주초 계열사를 3~6개로 줄이라는 김대중 대통령당선자의
발언으로 혼란을 겪은데 이어 다시 은행들과의 재무구조개선 약정에 앞서
당장 관련계획서를 제출하라는 압력까지 받고 있다.

더구나 은행들이 재무구조계선 계획과 관련해서는 5개년 장기계획까지
제출하라는 주문까지 해 금리 환율 등이 급변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무엇을
기준으로 어떤 계획을 짜서 내놓아야 할지 난감해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따라 기업들은 각종 "구조조정계획"을 짜느라 수출과 판매 등 경영
활동에 거의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이미 제출한 계획들에 대해 새정부 일각에서 "성의가 부족하다"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는 등 "재벌응징론"이 사라지지 않고 있어 위기감까지 감돌고
있는 분위기다.

이번주 들어서는 월말까지 맺으면 되는 재무구조개선약정에 대해 은행들이
경쟁적으로 제출시한을 앞당기고 있어 기업들을 벼랑으로 몰고 있다.

일부 은행은 17일 공문을 보내 19일까지 재무구조개선 5개년 일정이 포함된
계획 제출을 요구하기도 해 많은 그룹의 재무팀들이 연 3일째 시내 호텔
등에서 합숙을 하며 철야작업을 벌여야 했다.

각 그룹들은 <>부채비율 감축 <>자구 및 차입금 상환 <>계열구조 조정
<>지배구조 개선 등이 포함된 재구구조개선계획을 3~4일만에 도저히 만들
수 없다며 한달간의 유예를 요청하고 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촉박한 일정뿐만 아니라 재무구조개선약정이 일으킬 부작용에 대해서도
많은 걱정을 하고 있다.

모그룹 관계자는 "계열회사 통폐합 사업축소 사업분할 등 내용에 대해
보안유지가 안되면 기존 거래선의 이탈이나 해당사 임직원의 동요가 불가피
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은행측에서 요구하는 구조개선 5개년계획의 경우 거시경제지표, 국내
정책 변화, 경쟁국 동향, 시장수요 등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가 없는 상태
에서 작성될 수 밖에 없어 결국 또 "성의없는" 계획이라는 비난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재계의 우려다.

경제연구소 일각에서는 재무구조개선계획이 자칫 관치금융을 고착화시키고
기업경영의 자율성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기 시작했다.

민간경제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이익을 내는 기업은 육성하고 그렇지 않은
기업은 도태시키겠다는 식의 단순한 대기업정책이 효과적"이라며 "재무구조
개선협정의 경우도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기업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제출시한을 다소 탄력적으로 적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영설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