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주요 교역상대국들이 최근 잇따라 대한 수입규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은 수출증대에 국가경제의 명운을 걸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 실로
우려할 만한 사태가 아닐 수 없다.

우리 기업들이 IMF사태 이후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공격적으로 수출확대에
나서면서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등 한국의 주요 수출대상국은 물론 중남미
와 아시아 각국들이 우리의 수출드라이브 전략에 제동을 거는 강력한 조치
들을 취하고 있다.

일본은 오는 4월부터 한국산 철강 화학제품 섬유류 등 78개 품목에 대해
일반특혜관세(GSP)를 철폐키로 했는가 하면 EU는 5월부터 한국상품에 대한
GSP적용을 전면 중단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미 한국제품의 덤핑조사에 착수한 대만은 최근 농산품 철강 전자 등
82개 품목의 수입량과 판매가격에 이상이 있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해 우리
업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얼마전부터 우리의 새로운 수출시장으로 떠오른 베트남은 오토바이와
승용차 완제품에 대한 수입금지조치를 취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미국의 자동차 및 반도체업계가 IMF 등을 통해 가하고 있는
통상압력을 보면 앞으로 미국과의 통상분쟁이 새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라는
조짐이 뚜렷해지고 있다.

이처럼 우리의 주요 교역상대국들이 아시아 금융위기 발생이후 한국의
수출확대노력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일본 대장성 통계에 따르면 일본의 지난 1월 아시아지역에 대한 무역수지는
8년만에 처음 적자를 기록했으며 특히 한국에 대한 수출은 무려 41.6%나
감소, 34억엔의 적자를 낸 것으로 집계됐다.

비록 일본측의 통계이긴 하지만 일본이 한국과의 무역에서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했다는 것은 만성적인 대일 무역적자국인 한국으로서는 더없이
반가운 일이지만 그동안 한국을 가장 안정적인 일본상품시장으로 믿어온
일본으로서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전개라고 할 것이다.

또 미국의 지난해 무역적자가 9년만의 최고치인 1천1백37억달러에 달했다는
미국 상무부의 발표도 한국 등 미국의 주요 교역국 상품에 대한 강도높은
수출견제를 예상케 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한국이 아직 심각한 금융위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시점에서
무역상대국들이 무리하게 시장개방확대를 강요하고 한국으로부터의 수입을
규제하려 한다면 이는 결국 자국의 이익에도 배치되는 근시안적 발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역대국들의 수출부진이 근본적으로 아시아 금융위기 및 일본의 저성장
때문일진대 수출 회복을 위해서는 아시아 금융위기 해소를 위한 지속적인
지원과 일본의 내수중심 경기부양이 급선무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지금 경제부국들이 해야할 일은 새로운 수입규제조치를 취함으로써 위기에
처한 아시아국가들의 유일한 숨구멍을 막아버리는 일이 아니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