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과 대기업들 간에 진행되고 있는 "재무구조개선을 위한 약정"이 부실
이나 졸속약정으로 흐를 게 불을 보듯 훤하다.

수십년간 진행돼 나름대로 자리가 잡혀 있는 기업의 경영및 재무구조에
대한 재편게획을 불과 일주일 사이에 만들라고 밀어부치고 있기 때문이다.

장래가 예측되지 않는 상황에서 상당한 시일을 주고 만들라고 해도 쉽지
않은 일을 며칠새에 밤을 새워가며 만들라니 "눈 가리고 아웅"으로 때우라고
하는 것과 다름 없다.

게다가 기업보다 부실줄이기가 더 급한 은행들이 과연 기업을 관리해도
되는 것인지도 그렇지만 은행마다 중구난방으로 내용을 요구해 일관성마저도
확보되지 않은 실정이다.

기업들은 이에따라 이번 협약이 본래의 취지대로 관치금융 탈피와 기업
체질개선의 한 전기가 되려면 시간을 충분하게 주어 정말 충실한 계획이
제출되도록 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제출된 자료를 이용해 정부가 뒤에서 조정하는 일이 없도록 은행의 경영
자율화도 함게 추구해야 한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약정의 문안과 약식이 정해져 있다.

금년부터 오는 2002년까지 5년간의 부채감축계획을 포함한 재무구조 개선
계획을 제출하게 돼 있다.

구체적인 수치는 물론 부동산및 주식매각, 증자 계열사 통폐합 등의 정리
계획, 지배주주의 재산출연 계획 등을 담아야 한다.

계열기업 정리는 사업축소와 영엽양수도, 사업분할까지 망라해야 한다.

그룹의 대주주가 어느 계열기업에 대표이사로 취임할 것인지와 사외이사
선임계획도 밝히게 돼 있다.

이같은 내용을 갖춘 제반 서류를 이미 지난 주말까지 내도록 했다.

지난 18일에야 제출할 내용을 통보하고 불과 3일만에 모든 서류를 내도록
함으로써 기업들이 밤을 새워가며 작업을 하고 있으나 재때 낸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게 현실이다.

실제로 지난 주말까지 서류를 제출한 곳은 아남 금호 대림 코오롱 한일
한진 한솔 대상그룹 등 8개 그룹에 불과하다.

은행들은 25일까지 심사와 조정을 끝내고 28일까지는 협정을 맺을 계획이다.

이에 30대 이외의 그룹에 대해선 3월중 약정을 체결하게 돼 잇다.

하지만 기업들은 <>시간 촉박 <>거시지표의 불가측 <>객관적 심사기준
미흡 <>기업정보 누출에 대한 불안 <>은행의 심사능력부재 <>은행간 형평성
논란 등을 지적하고 있다.

결국 실현가능성이 있는지도 제대로 검증하지 못한채 형식적인 서류제출에
그칠 것이라는게 이구동성이다.

이에따라 충분한 시간을 갖고 객관적 공통기준을 마련한뒤 실질적인 약정을
체결해야만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무리 짧게 잡아도 1개월이상은 더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기업 뿐 아니라 은행 관계자도 "환율과 금리등이 하루가 다르게 격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5년간의 재무구조개선계획을 짜는 것은 사실상 무리"라며
"신정부 쪽에서 다그쳐 자료를 받고는 있지만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실토했다.

기업들은 특히 다른 기업에 구조조정계획이 알려지면 기업경영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와함께 약정이 졸속으로 진행되면서 은행들이 서로 다른 기준을 제시,
혼선을 빚고 있기도 하다.

한일은행의 경우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는 삼성그룹의 의견을 받아들여 일단
기본적인 골격만 이달말까지 확정하고 세부사항은 추후 보완키로한 반면
외환은행은 현대그룹에 대해 이달말까지 세부계획까지 모두 확정토록 했다.

<하영춘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