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정책 "왔다갔다" .. 재계 진의파악 곤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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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개의 계열사를 어떻게 3~6개로 줄일 수 있나. 업종을 뜻한 것일게다"
"그렇지 않다. 6개 업종이라면 자동차 전자 금융 건설 유통 석유화학 등을
다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지난 17일 김대중 대통령당선자가 "대기업은 3~6개 핵심기업을 빼고는
정리해야 할 것"이라고 "한마디" 했을 때 모그룹 기조실에선 "진의" 파악을
놓고 이렇게 의견이 분분했다.
헷갈리는건 기업만이 아니었다.
다음날 박태준 자민련총재는 업종을 줄이자는 의미로 해석했고
비상경제대책위원회의 김용환대표는 "원칙적으로 회사수를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결국 이 해프닝은 김당선자가 23일 독일 데어슈피겔지와의 인터뷰에서
"재벌들이 40~50개의 계열기업을 거느리고 있으나 앞으로 3~6개로 줄어들
것"이라고 못을 박아 결론이 났다.
기업경영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한마디가 제대로 해석되는데 무려
1주일이 걸린 셈이다.
모그룹 관계자는 "새정부측이 지난 2개월여 동안 추진했던 경제정책들은
흔히 이런 식이었다"며 "이런 상태에서 기업들은 정서적 혼란을 겪을수 밖에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예측가능한 경제정책을 펴 달라는 얘기다.
<>의중 파악이 힘들다=기업들이 새정부측의 의도를 잘못 읽어 헛손질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대표적인게 지난달 13일 김당선자가 4대그룹 총수들과의 회동에서 주문한
지배주주의 경영책임강화 문제.
각 그룹마다 해석이 달랐다.
현대와 LG가 즉각 구조조정계획을 언론에 발표하면서 전문경영인체제의
확대 등을 선언했지만 새정부측의 반응은 냉담했다.
총수들의 사재 출연이 빠졌다는 것이었다.
삼성과 SK그룹이 뒤늦게 사재출연을 포함한 구조조정 계획을 내놓았지만
새정부측은 여전히 탐탁찮아 했다.
오히려 그룹회장들이 주력계열사의 대표를 맡아 "부도가 나면 민.형사상의
책임도 지는" 실질적인 책임경영을 주문해 각 그룹을 당혹케 했다.
지난 6일 김당선자와 30대그룹 회장과의 회동도 마찬가지였다.
회장들은 오찬회동때 준비된 자료의 한귀퉁이에 있던 "비서실 및 기조실
폐지"가 톱뉴스로 취급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며칠뒤 기조실 폐지는 새정부의 방침으로 이미 기정 사실화돼
있었다.
<>일관성이 아쉽다=연초부터 재계는 차기정부의 대기업정책이 "빅딜(그룹간
대규모 사업교환)"로 가닥을 잡아가자 적잖이 당황했었다.
처음에는 아이디어 수준일 것으로 폄하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국민회의측의 압박은 예상 이상이었다.
"핵심업종을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육성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김원길
정책위의장)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면서 연일 언론에는 교환대상 기업의
명단이 게재됐다.
그러나 "팔려야할" 회사로 지목된 일부 업체들의 해외비즈니스가 마비되는
등 부작용이 커지자 빅딜은 갑자기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구조조정계획서 제출건도 마찬가지다.
이헌재 비대위 실무기획단장이 30대그룹 기조실운영회의에 참석해 "반드시
14일까지 내달라는 것은 아니니 자율적인 구조조정을 해달라"는 요지의
발언을 해 안심하고 있던 기업들은 며칠뒤 <제출하지 않으면 명단을 공개
하겠다>는 압박을 받고 일제히 비대위로 달려가야 했다.
<>정책부터 투명하게=김당선자의 17일 발언을 "3~6개 업종"으로 해석했던
그룹들엔 23일 비상이 걸렸다.
이들 그룹은 계열사 축소계획을 느슨하게 짜서 주거래은행에 재무구조개선
약정용으로 이미 제출한 상태.
전면적인 계획 수정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기업 관계자들은 그래서 "다소 기업에 불리한 정책이라도 좋으니 제발
예측 가능하게만 해달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경영의 투명성만 요구할 것이 아니라 정책의 투명성도 높여 달라는 부탁인
셈이다.
장기비전과 세부적인 실행계획을 포함한 경제정책을 조속히 가시화해
달라는 것이다.
그래야 예측가능한 경영환경이 마련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단체의 한 관계자는 "국제통화기금(IMF)과의 합의사항을 포함해 기업들
이 참조해야 할 텍스트가 너무 많다"며 "이를 기업들의 실행계획으로 단순화
시켜 주는 것이 정부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필요하다면 30대그룹 회장들을 다시 부르더라도 대기업정책의
비전과 청사진을 명확히 보여 줘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권영설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24일자).
"그렇지 않다. 6개 업종이라면 자동차 전자 금융 건설 유통 석유화학 등을
다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지난 17일 김대중 대통령당선자가 "대기업은 3~6개 핵심기업을 빼고는
정리해야 할 것"이라고 "한마디" 했을 때 모그룹 기조실에선 "진의" 파악을
놓고 이렇게 의견이 분분했다.
헷갈리는건 기업만이 아니었다.
다음날 박태준 자민련총재는 업종을 줄이자는 의미로 해석했고
비상경제대책위원회의 김용환대표는 "원칙적으로 회사수를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결국 이 해프닝은 김당선자가 23일 독일 데어슈피겔지와의 인터뷰에서
"재벌들이 40~50개의 계열기업을 거느리고 있으나 앞으로 3~6개로 줄어들
것"이라고 못을 박아 결론이 났다.
기업경영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한마디가 제대로 해석되는데 무려
1주일이 걸린 셈이다.
모그룹 관계자는 "새정부측이 지난 2개월여 동안 추진했던 경제정책들은
흔히 이런 식이었다"며 "이런 상태에서 기업들은 정서적 혼란을 겪을수 밖에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예측가능한 경제정책을 펴 달라는 얘기다.
<>의중 파악이 힘들다=기업들이 새정부측의 의도를 잘못 읽어 헛손질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대표적인게 지난달 13일 김당선자가 4대그룹 총수들과의 회동에서 주문한
지배주주의 경영책임강화 문제.
각 그룹마다 해석이 달랐다.
현대와 LG가 즉각 구조조정계획을 언론에 발표하면서 전문경영인체제의
확대 등을 선언했지만 새정부측의 반응은 냉담했다.
총수들의 사재 출연이 빠졌다는 것이었다.
삼성과 SK그룹이 뒤늦게 사재출연을 포함한 구조조정 계획을 내놓았지만
새정부측은 여전히 탐탁찮아 했다.
오히려 그룹회장들이 주력계열사의 대표를 맡아 "부도가 나면 민.형사상의
책임도 지는" 실질적인 책임경영을 주문해 각 그룹을 당혹케 했다.
지난 6일 김당선자와 30대그룹 회장과의 회동도 마찬가지였다.
회장들은 오찬회동때 준비된 자료의 한귀퉁이에 있던 "비서실 및 기조실
폐지"가 톱뉴스로 취급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며칠뒤 기조실 폐지는 새정부의 방침으로 이미 기정 사실화돼
있었다.
<>일관성이 아쉽다=연초부터 재계는 차기정부의 대기업정책이 "빅딜(그룹간
대규모 사업교환)"로 가닥을 잡아가자 적잖이 당황했었다.
처음에는 아이디어 수준일 것으로 폄하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국민회의측의 압박은 예상 이상이었다.
"핵심업종을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육성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김원길
정책위의장)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면서 연일 언론에는 교환대상 기업의
명단이 게재됐다.
그러나 "팔려야할" 회사로 지목된 일부 업체들의 해외비즈니스가 마비되는
등 부작용이 커지자 빅딜은 갑자기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구조조정계획서 제출건도 마찬가지다.
이헌재 비대위 실무기획단장이 30대그룹 기조실운영회의에 참석해 "반드시
14일까지 내달라는 것은 아니니 자율적인 구조조정을 해달라"는 요지의
발언을 해 안심하고 있던 기업들은 며칠뒤 <제출하지 않으면 명단을 공개
하겠다>는 압박을 받고 일제히 비대위로 달려가야 했다.
<>정책부터 투명하게=김당선자의 17일 발언을 "3~6개 업종"으로 해석했던
그룹들엔 23일 비상이 걸렸다.
이들 그룹은 계열사 축소계획을 느슨하게 짜서 주거래은행에 재무구조개선
약정용으로 이미 제출한 상태.
전면적인 계획 수정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기업 관계자들은 그래서 "다소 기업에 불리한 정책이라도 좋으니 제발
예측 가능하게만 해달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경영의 투명성만 요구할 것이 아니라 정책의 투명성도 높여 달라는 부탁인
셈이다.
장기비전과 세부적인 실행계획을 포함한 경제정책을 조속히 가시화해
달라는 것이다.
그래야 예측가능한 경영환경이 마련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단체의 한 관계자는 "국제통화기금(IMF)과의 합의사항을 포함해 기업들
이 참조해야 할 텍스트가 너무 많다"며 "이를 기업들의 실행계획으로 단순화
시켜 주는 것이 정부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필요하다면 30대그룹 회장들을 다시 부르더라도 대기업정책의
비전과 청사진을 명확히 보여 줘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권영설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