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의 신탁통치를 받게 되면서 치솟은 물가가 가뜩이나
어려워진 서민생활을 더더욱 조이고 있다.

마이너스 성장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하루가 다르게 실업자들이
길거리에 쏟아져나오는 판에 물가마저 들썩거려 사실상 생활고는 최악이다.

물가상승에 따른 국민생활고의 가중은 자칫 심리적인 공황으로까지 몰고갈
수도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물가는 사실상 손을 써볼수 없는 상황인 것 같다.

환율급등과 세금인상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작년 12월중 소비자물가는 전달에 비해 2.5%, 올해 1월중에는 2.4% 각각
올랐다.

이달에도 비슷한 상승률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연간 3~4%대에서 움직이던 생산자물가는 환율상승에 따른 원자재수입가격의
급등으로 지난해 무려 10.9%까지 치솟았다.

이같은 양상을 반영, 지난 17일 IMF측은 우리나라에 대한 제5차
자금인출에 앞서 정부와 합의한 소비자 물가상승률을 9%대로 높였다.

당초 IMF측은 10.6%의 두자릿수를 제시했으나 "물가를 반드시 한자릿수에
묶겠다"는 정부의 다짐을 받고 9%대에 합의해줬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말이 한자리지 9%대후반을 넘기면 곧장 두자릿수 물가가 된다.

이에따라 올해 새정부의 물가안정시책은 전방위로 펼쳐질 수밖에 없다.

환율상승에 따른 가격인상은 불가피하다 치더라도 시장내 가격왜곡
요인들을 없애는 작업부터 해나가야한다는 지적이다.

농.수.축산물의 경우 산지와 소비자간 직거래를 활성화, 도시서민들의
실질소득 감소분을 어느정도 상쇄해주고 중간상인들의 폭리도 근절시켜야
한다.

또 수입원자재가격 상승분을 넘는 가격인상과 인상요인이 없는 상태에서
이뤄지는 공산품의 편승인상도 최대한 억제해야한다.

현재의 높은 환율을 기준으로한 가공식품 등 생필품가격도 향후 환율이
안정되는 추이에 따라 가격이 낮아지도록 지속적인 행정지도를 해나가야한다.

부당인상 사업주에 대해서는 가격인상시 사전보고제도의 의무화 등
강력한 행정제재조치도 병행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뿐만아니라 시민단체 등이 참여하는
범국민적 물가감시시스템을 활성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재정경제원 임상규 물가정책과장은 "보다 근본적으로는 유통단계축소를
위한 대형할인점의 설립및 판매활성화와 공산품가격표시제의 확대도입을
통해 시장내 경쟁구조를 정착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직까지 오르지않은 철도요금 의료보험수가 등 일부 공공요금도 전반적인
물가의 추이를 봐가며 인상시기를 최대한 늦춰야한다.

이와함께 일부 생필품가격의 동결도 조심스럽게 거론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한 관계자는 "서민들의 생계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일부 생필품에 대해서는 정부의 보조를 통해 가격을 동결하는 조치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경제활동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금물이라고 하지만 물가만은
"억지"를 부려서라도 잡아달라는 게 국민들의 주문이다.

< 조일훈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