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환란으로부터 탈피하는 게 당장의 시급한 과제라면 시장경제원칙에
입각해 경쟁을 촉진하고 거래질서를 공정화하는 등 경제기반을 선진화하는
것은 장기적인 숙제라 할 수 있다.

경쟁을 통한 생존능력의 배양없이는 더이상 살아남을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우리경제가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된 것도
결국 기업들의 경쟁력이 급속히 상실돼 왔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지난 95년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하면서 사실상 각국의 무역장벽이
철폐돼 무한경쟁이라는 냉엄한 생존경쟁에 돌입했지만 우리경제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 옷으로 바꿔 입지 못한 결과라는 것이다.

더군다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카르텔 방지에 대한 국제적인
공조를 강화하고 있는 것도 "경쟁여건 조성"의 불가피성을 말해준다.

타의든 자의든 압축성장과정에서 파생됐던 각종 보호막을 철폐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새정부가 그동안 대기업 규제의 산실이었던 공정거래위원회의 중점기능을
경쟁촉진시책으로 전환키로 한 것은 정책변화의 일대 신호탄으로 받아들여
지고 있다.

정부는 건설 건축 수출입관련규제 등 경제전반에 걸쳐 대대적인 규제
혁파작업을 벌여 자유로운 경쟁이 가능해지도록 시장여건을 개선할 방침이다.

우리경제의 동맥경화증세는 광범위한 규제에서 비롯됐다는 시각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역대정권들이 규제혁파를 내걸었지만 번번이 실패했던 것은
새정부에도 시사하는 점이 많다.

집단이기주의와 부처이기주의를 어떻게 척결하느냐가 최대의 관건이기
때문이다.

규제혁파가 말잔치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일회적이고 단편적인 접근에
그칠 것이 아니라 발상의 전환을 통한 구조적이고 체계적인 해결책을 마련
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라는 뜻이다.

현행 개별법상 인정되고 있는 카르텔만 해도 52개 법령에 근거해 66개에
이른다.

하지만 각 부처들이 폐지 또는 보완의사를 밝힌 것은 15개에 불과하다.

결국 경쟁촉진을 위한 규제혁파 작업은 단순히 규제철폐에만 머물러서는
안되고 소관 부처의 몸집줄이기가 병행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경쟁촉진과 함께 공정한 거래질서를 확립하는 것도 새정부의 과제다.

우선 대기업의 중소기업에 대한 횡포는 중소기업 육성차원에서도 시급히
개선돼야 할 과제다.

중소기업의 67%가 대기업과 하도급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또 관행으로 굳어져 있는 각종 담합행위나 예식장이나 장례식장에서의
끼워팔기 등은 반드시 척결돼야 할 사안이다.

이같은 불공정행위는 경쟁제한은 물론 직접적으로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측면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새정부가 강도높게 추진하고 있는 각종 대기업정책도 경쟁촉진이나
공정경쟁을 통한 우리경제의 경쟁력 제고라는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다각화에 따른 힘의 분산보다는 일부 업종으로의 집중을 통한 전문화로
경쟁력을 키우고 차입에 의한 무리한 경영관행을 바로 잡자는 의도에서다.

아무튼 새정부가 이같은 경제환경의 패러다임에 걸맞게 변신하기 위해서는
철저히 시장원리에 입각, 기업의 자율성을 대폭 확대해 주는 것이 최선의
방안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박영태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