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합은 수출비중이 높은 그룹이다.

지난 96년에는 75%, 작년에는 79%나 됐다.

좁은 국내시장보다는 드넓은 해외시장을 겨냥해왔기 때문이다.

고합은 그래서 "저성장하에서의 고금리"라는 악조건을 이겨낼 해법도
수출에서 찾고 있다.

그저 많이 팔겠다는 정도가 아니다.

그룹회장부터 말단 여직원까지 그룹 전체가 수출총력전에 나선 상태다.

장치혁 회장이 "원료를 달러로 사서, 제품을 달러로 팔아 차익을 내는
것만이 하루빨리 IMF체제에서 벗어나는 길"(신년사)이라며 앞에서 끌고 있다.

임직원들도 휴일을 잊은채 생산에 매달리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지난 설연휴때 큰 공장들을 제쳐두고 의왕시에 있는
(주)고합 공장을 방문한 데는 이런 까닭이 있는 것이다.

올해 수출목표를 보면 더 확실하게 느껴진다.

4조7천5백억원으로 작년보다 1조4천억원이나 늘려잡았다.

수출비중도 91%까지 끌어올리기로 했다.

이를 위해 고합은 "종합화학그룹으로의 전문화"를 새로운 비전으로 세웠다.

전문화가 수출극대화를 위한 가장 효율적인 체제이기 때문이다.

이와함께 경영혁신과 구조조정작업에도 박차를 가하기로 했다.

IMF를 기업체질 개선의 기회로 삼고 있는 셈이다.

<>종합화학그룹으로의 전문화

고합은 위험분산과 다목적 투자가 목적인 다각화에는 관심을 끊었다.

대신 그동안의 많은 투자로 경쟁력을 갖춘 화학사업에 역량을 모으기로
했다.

작년말 2단지까지 완공한 울산재구축공장의 생산능력은 연간 3백60여만t.

동일단지로는 국내 최대규모이다.

이 공장에서 생산되는 섬유원료 테레프탈산(TPA)과 각종 합성수지는
인도네시아와 중국 청도에 있는 해외법인에 상당량이 공급된다.

지난 96년 인수한 독일의 EMTEC마그네틱스사에는 베이스필름이 나간다.

국내 생산공장은 안정적인 수요처를, 해외법인은 확실한 원료공급원을
확보하는 시너지 효과까지 발생한다.

<>현금흐름 위주 경영

잘 만들고 잘 파는 것만으로 수출전쟁이 끝나는 건 아니다.

경영에서 낭비요인이 발생하면 애써 번 달러는 소용이 없어진다.

고합은 그래서 올해는 현금흐름(cash flow)을 중시하는 경영체제를
정착시키기로 했다.

이를 위해 기존 부채를 떨어내는데 총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보유부동산과 유가증권도 업무상 꼭 필요하지 않으면 즉시 처분키로
했다.

생산설비도 현금흐름을 좋게하기 위해 팔 수도 있다.

이미 고합은 울산2공장의 필름생산 2개 라인을 독일회사에 "매각후
임차"조건으로 1억1천3백만달러에 팔았다.

이를 통해 작년말 현재 4백62%인 부채비율을 금년말에는 3백%대로,
99년도에는 2백%대로 낮출 계획이다.

확장을 목표로 하는 다각화를 포기하고 전문화로 목표를 바꾸면서 생긴
돌파구다.

<>전사적인 고통분담

고합은 이미 임원 15%를 줄였다.

남은 사람도 연봉이 20%가 깎였다.

간부사원들은 연봉제를 도입해 사실상 임금을 줄였다.

일반사원도 임금동결을 추진키로 했다.

임금뿐만 아니다.

사업비 및 일반경비는 30~50%가 삭감됐다.

해외지점은 통합하거나 전망이 나쁜 지역에선 철수시키기로 했다.

운영경비를 30%이상 축소하기 위해서다.

고합 직원들은 그러나 불만이 매우 적은 편이다.

금융권의 외화가 부족하면 신용장 개설 자체가 어려운 것이 수출업체의
현실이란 걸 익히 인식하고 있어서다.

"달러가 부족한 가운데서 달러를 벌어야 하는"것이 IMF시대의 생존논리라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 권영설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