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금융은 그동안 기업의 부채의존적 성장과 과다차입경영의
뒷바라지를 해왔다.

그리하여 시장경쟁에 의해 자금을 구성하고 배분해야 하는 본래의 기능에서
일탈하여 대기업과 정부의 틈바구니 속에서 정경유착에 의한 관치금융을
공급하는 기능을 수행해 왔던 것이다.

그 결과는 종속과 자기희생이었다.

대기업에 종속되고 정부에 종속되어 왔다.

대기업과 은행 그리고 정부와 은행의 관계는 악어와 악어새와 같은 공생
관계로 발전하였으며 그 연결고리가 바로 정경유착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동안 우리나라 은행에는 주인이 없었다.

그래서 은행의 모든 경영진들은 전세집 관리자들이었다.

내가 내집을 관리하는 것과 세든 사람이 세집관리하는 것은 같을 수 없는
것 아닌가.

우선 경영에 주인이 없고 책임질 사람이 없으니 대출이 부실해질 수 밖에
없다.

사람이 남아돌고 점포가 적자를 내고 조직에 낭비가 있어도 바로 잡혀질
수가 없다.

노동생산성은 선진국의 30% 수준인데 월급은 거의 같이 받았으니 견뎌낼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우리 금융기관들은 모두 속빈 강정이 된채 부실채권과 빛더미위에서
신음하는 신세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러한 우리나라 금융의 위상을 어떻게 제자리로 돌려 놓을 것인가.

이제 우리나라 금융은 확고한 자율경영체제로 기업성을 되찾아야 함과
동시에 능률경영과 책임경영을 구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은행경영의 투명성 확보가 선결과제이다.

이러한 방향으로의 개혁은 최근 IMF사태이후 광범하게 추진되고 있으나
아직도 미흡한 점들이 많다.

먼저 금융제도와 관련, 최근 은행관계법들을 개정하였으나 아직 만족스럽지
않다.

한국은행을 독립시켜 통화와 물가에 대한 책임을 맡긴다고 했는데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통화공급의 경로에는 금융 외환 재정 등 세가지가 있고 이중 금융과 외환을
중앙은행이 통제해야 하는데 외환통제업무는 재경원이 갖고 있다.

어느나라나 통화와 물가를 조절하는데 있어서 금리와 환율은 차의 두바치와
같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더구나 금융업무에 있어서도 한국은행은 총금융자산의 3할밖에 안되는
일반은행만을 통제할수 있고 나머지 제2금융권은 통제권 외에 있다.

이렇게 볼때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그 기능을 수행하는데 크게 미흡하며
마땅히 외환과 환율조정권과 제2금융권에 대한 통화적통제권을 부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새 한은법의 시행령에서 금융통화위원의 제청업무를 재경원이
갖도록 한다고 하는데 이것은 시대역행적인 발상이라 할 것이다.

금융통화위원회가 한국은행의 내부기관인 이상 마땅히 그 업무는 한국은행
이 갖도록 해야 하며 이것이 한국은행을 재경원의 예속에서 독립시키려는
입법취지에도 맞는 것이다.

금융감독위원회는 현재 총리실 소관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한국은행과
같이 특별법에 의한 특수법인으로 독립시키는 것이 감독업무의 중립성을
위해서 필요할 것이다.

이번 김대중 대통령의 비자금사건에서 은행감독원이 권력기관의 외압에
의해 불법행위에 개입한 사실을 거울삼을 필요가 있다.

이와 더불어 은행에 주인을 찾아주어야 한다.

산업집중을 막으면서 은행에 주인을 찾아주기 위해서는 금융전업가에게
은행을 맡겨야 한다.

이러한 모든 미비점들을 시정하기 위해서 한은법등 금융관계법은 재개정
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금융기관의 경쟁력강화를 위한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정부에 의한 인사와 경영간섭은 없어야 하며 재벌기업과 은행간의 유착도
단절돼야 한다.

또 금융기관들의 합리화 구조조정이 추진돼야 한다.

사람과 점포의 과감한 정리와 재조정, 시간제근무자들의 창구배치,
사무자동화 등 감량조정이 필요하다.

금융기관의 국제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금융기관간의 국내외적인
인수합병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국내적인 통폐합은 당장 대규모로 추진할 필요가 있으며 정부는 이를 적극
지원유도해야 한다.

외국과의 합작투자나 외국인에 의한 국내금융기관 인수도 바람직하며 이런
점에서 외국인에 대한 차별도 철폐해야 할 것이다.

< 중앙대 교수 >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