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의 청와대 관저에서 첫날 밤은 "불면의 밤"이었다.

김대통령은 25일 공식 취임식을 비롯 청와대수석진 임명장수여식, 경축연회,
주요외빈면담및 만찬 등 숨돌릴틈없이 강행군을 했다.

김대통령은 취임 첫날 공식일정을 모두 마치고 저녁 9시40분께 관저로
돌아가 배달된 26일자 조간신문을 읽은뒤 자정께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김대통령은 아침보고에 들어간 박지원 청와대대변인에게 "자다가
깨어나 긴 시간 생각을 했다"며 "순조롭게 출발하지 못해 국민에게 걱정을
끼쳐 드리게 돼 고민스러웠다"고 말해 "김총리지명자 국회인준 무산"이 계속
마음의 짐이 되고 있음을 내비쳤다.

<>.김대통령은 26일 아침6시에 일어나 TV뉴스시청에 이어 조간신문들을
읽은뒤 관저로 올라온 박대변인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지시하는 것으로 취임
이틀째를 맞았다.

김대통령 내외는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준비중인 3남 홍걸씨와 며느리,
두 손자와 함께 아침을 함께 한뒤 오전 8시40분께 본관 집무실로 등청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아침9시부터 시작되는 18차례의 외빈면담에 앞서
기자들이 "이틀째 맞는 소감이 어떠냐"는 질문에 "여기에 있으니 세상을
모르는 것 같다"며 "세종로 및 과천청사에 자주 나가고 국민들의 얼굴을
자주 봐야 겠다"고 말해 "현장 대통령"이 되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김대통령은 "원래 세종로 정부종합청사로 집무실을 아예 옮기려고 했으나
청사 사정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했다"며 "청사사무실로 자주 갈 계획"
이라고 밝혔다.

<>.김대통령은 26일 취임식 참석차 방한중인 12개국 주요 외국인사 79명을
18개팀으로 나눠 20~40분 간격으로 오전9시부터 오후6시까지 만나는 강행군
을 했다.

김대통령은 오전9시 첫 접견자인 바이츠제커 전 독일대통령의 예방을
받으면서 외빈접견 일정에 들어갔으며 수시로 영수회담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김대통령은 나카소네 전 일본총리로부터 하시모토총리의 친서를 전달
받은뒤 나카소네 전 총리가 "빡빡한 일정 때문에 힘들지 않느냐"고 묻자
"나는 훈련이 되어 있어 괜찮다"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이날 김대통령은 지난 73년 도쿄 납치사건 이전부터 망명때까지 많은
도움을 받은 고노 요헤이 전 일본부총리겸 외상과는 통역도 물린채 20분간
독대, 눈길을 끌었다.

김대통령은 이날 프랑스의 모로와 전총리와 러시아의 바자노프 외교
아카데미 부원장으로부터 각각 정상회담을 제의받기도 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한/일간의 관계개선에 깊은 관심을 보였으며 나카소네 전
총리에게는 "한-일국교 정상화이후 33년동안 실질적인 관계개선이 없었다"며
"양국지도자가 적극 나서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특히 한/일의원연맹대표단을 접견했을 때는 "정신대문제는 국적을 떠나
인간적인 차원에서 전세계가 납득하도록 처리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김대중 도쿄 납치사건''도 책임추궁은 하지 않더라도 진상규명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 김수섭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