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롱 < 한국 SSA 사장 >

국내에서 전사적 자원관리(ERP)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것은 오래된 일이
아니다.

지난 95년 처음 소개된 이후 경상수지 적자가 2백억달러가 넘어선
96년말 정점을 이뤘다.

우리경제가 고비용 저효율의 구조적 모순을 어떻게 극복해 선진국
대열에 오르느냐는 물음에 대한 대안으로 ERP가 제시됐었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었다.

이제는 IMF 위기에 처한 우리기업들이 어떻게 난국을 헤치고 살아남을
것인가를 놓고 또 한번 ERP를 논하게 됐다.

그러나 국내 기업들은 아직 ERP에 대한 논의를 할 준비가 덜된 것 같다.

특히 재벌들은 굳어버린 개혁의지와 고정관념, 의사결정의 복잡성,
정책결정의 비효율성이라는 복잡다기한 벽에 둘러 싸인채 경쟁력 확보
등의 현안을 등한시하고 있다.

ERP시스템의 성공 가능성은 오히려 중소기업들에서 높다고 본다.

지난 1월 하루에도 약 3백50여개의 기업들이 문을 닫아야 했던
와중에서도 ERP를 구축한 SSA의 고객 65개사중에서는 단 한 곳도 부도가
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들은 그동안 MRP나 ERP시스템을 도입해 꾸준히 업무처리과정을
개선하고 원가절감에 나서 경쟁력을 확보해 왔다.

최근들어 대기업들에서도 ERP시스템의 성공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들이 추진하는 구조조정이 ERP를 도입했을때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져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재벌기업들이 투자여력이 있을 때보다는 생존문제에
매달리게 됐을때 ERP의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먼저 ERP는 자기 개혁에 대한 의지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

대기업들도 이제 구조조정과 같은 뼈를 깎는 자기개혁 없이는 살아남지
못하게 됐다.

ERP 성공의 바탕이 외부의 여건 때문에 형성된 것이다.

혹자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냉철한 기업세계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자사의 특수한 기업환경을 고집해서는 경쟁사와 어깨조차 나란히 할 수
없다.

국내 기업들은 이제 선진 경영기법을 담고 있는 ERP를 적극 도입, IMF를
극복하고 국내외 경쟁업체와 맞부딪쳐야 할 때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