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대립으로 심각한 국정공백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재계가 대대적인
정치구조개혁을 요구하고 나서 관심을 끈다.

전경련과 대한상의는 26일 여당인 국민회의 자민련 양당의 정치구조개혁
위원회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국회의원수를 현재보다 30%이상 줄여 2백명
내외로 하고 지구당폐지와 국회상설화 등을 주장했다.

이밖에도 여러가지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했지만 기본 골격은 정치권도
몸집을 줄여 고비용구조를 시정하고 정치자금의 투명화를 통해 정경유착과
부정부패의 소지를 없애자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물론 재계가 제시한 구체방안에 대해서는 좀 더 전문적인 검토와 의견
조율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본다.

그러나 대체적인 방향에서는 여야 정치권은 물론 국민들도 공감하고 있는
사항이다.

특히 살빼기뿐 아니라 국회의 입법보좌기능을 강화시키는 등 보다
능률적인 국회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점은 재론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다만 우리가 주목코자 하는 것은 정치개혁의 필요성에 대해 정치권 자신
들이 공감하고 있으면서도 최소한 현재로서는 적극적으로 추진될 기미가
보이지않는다는 점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전인 지난달말 정치구조조정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
했었고, 여당인 국민회의와 자민련도 2개월 이내에 개혁안을 마련해 관련
법의 개정작업을 마치기로 합의했었다.

김대통령은 취임사에서도 정치개혁을 강조했음은 물론이다.

또 야당도 그러한 정치구조개혁에 이견이 있을 수 없음을 이미 확인한바
있다.

더구나 여야는 정치구조개혁을 위해 지방자치단체장선거를 1개월가량
늦춰놓은 상태다.

상황이 그러함에도 현재 여야가 추진하고 있는 정치구조개혁 작업이
충실하게 준비되고 있다는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느낌을 받는다.

여야가 국회의원 및 지방의회의원의 정수를 줄이고 정치자금의 양성화방안
등에 관해 나름대로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자체는 인정한다.

그러나 그러한 준비가 필요성을 절감하고 적극적으로 추진되기보다 마지
못해 흉내를 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을 가질 정도로 소극적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사실 국민들은 유례없는 경제위기를 맞으면서 정치권의 획기적인 변화가
불가피하고 또 스스로 앞장서줄 것으로 기대해왔다.

그러나 요즈음의 정치상황을 보면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양보하고 협력하기는 커녕 당리챙기기에 급급해
심각한 국정공백사태까지 몰고온 것은 국민들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하다.

당장 외채만기연장협상에 차질이 생기고 추경예산을 통한 실업대책 등
산적한 국정현안이 표류하고 있음을 정치권은 직시해야 할 것이다.

기업과 근로자들에게 강도 높은 고통분담을 요구하면서 정작 정치권
스스로는 이를 외면한대서야 말이 되지 않는다.

재계의 의견개진을 계기로 여야는 국가부도위기를 다시 불러올 우려가 큰
이번 사태를 하루빨리 종식시키고 고비용구조 청산을 위한 스스로의 개혁에
좀 더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