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발전할수록 그 기능이 축소조정돼야 하는 부문이 세가지가 있다.

정부 재벌 노조 등이다.

경제가 성숙단계에 접어들면 정부주도 경제는 시장주도 경제로 이행해야
하며 이러한 시장주도경제에는 재벌에 의한 산업의 독과점지배나 노조에
의한 노동시장의 독과점지배도 다같이 걸림돌이 된다.

그래서 노동시장도 자유화돼야 한다.

초기산업 시대에는 노동자의 단결투쟁이 노동자권익보호에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대중적 실업때문에 노사관계는 사용자우위에 있고 저임금이 지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가 발전하여 인력부족시대에 들어서면 노사관계는 대등관계로
바뀌고 고임금이 지배한다.

이 단계에서 노동자의 권익은 단결투쟁이 아니라 경쟁적인 노동시장이
보장된다.

다시 말하면 좋은 대우를 해주지 않으면 필요한 사람을 확보할수 없기
때문에 생산성에 상응하는 대우를 해주게 되는 것이다.

이 때에도 노동자의 단결투쟁은 임금을 일시적으로 더 올릴수 있지만
이것은 길게 보면 일시 가불받는 의미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노동자의 노조가입률을 보면 지난 40년동안 미국에서는 35%에서
15%로, 일본에서는 50%에서 23%로 각각 줄어들고 있다.

그리고 노조의 기능도 과격한 투쟁보다는 생산성향상과 고용보장협력 등
합리적인 협력쪽으로 발전하고 있다.

그러면 경제가 발전할수록 왜 노동시장은 자유화 유연화의 방향으로 적응해
가고 있는가.

이에 관해서는 두가지를 지적할수 있다.

첫째로 경제가 발전할수록 경제성장은 노동력의 유동화, 즉 노동력이
저생산성부문에서 고생산성부문으로 이동한다는 점이다.

대중적 실업시대의 경제성장은 고용의 증가에서 온다.

그러나 성숙단계에 들어서서 완전고용점을 넘으면 고용량의 증가는 없기
때문에 고용의 질, 즉 이미 일하고 있는 사람의 생산성증가에서만 경제성장
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 단계에서는 사람이 남아도는 저생산성부문에서는 되도록 많은
노동력을 방출하고 새로 생기는 고생산성부문에서는 가능한한 많은 노동력을
흡수해서 노동력이 빨리 순환돼야만 경제성장이 촉진될수 있는 것이다.

지난 90년동안 미국의 노동력이동을 보면 하급직인 단순노동자는 전체의
24%에서 2%로 줄고, 전문직이나 기술직과 같은 고급직은 10%에서 40%로
늘었으며(판매직과 같은 나머지 중간직은 그 비중에 큰 변화가 없음) 이것이
미국경제의 성장요인이었던 것이다.

다음으로는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노동의 성격이 지식화 기술화하고
서비스화 개별화 다양화하게 된다는 점이다.

예컨대 연봉을 받고 특정기술 임무를 받은 재택근로자의 노동관계는 자유화
개별화할수 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현재와 같은 개방경쟁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노동시장의 자유화가
필수적인 것이며,이런 점에서 정리해고제 파견근로제 변형근로제 등 자유화
조치는 과감히 추진해야 하며 이를 전제로 보완조치를 마련해 가야 한다.

그동안의 저임금과 산업보호시대에는 예컨대 10명의 직원 가운데 8명만
생산성경쟁력이 있으면 나머지는 제 밥벌이를 못해도 이를 끌어안고 살아
남을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의 무한경쟁시대에서는 전원이 경쟁력을 가져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해고할수 밖에 없는 세상이 되었다.

개방경쟁하에서 기업환경은 수시로 변한다.

환경변화로 기업이 경쟁력을 잃게 되면 일부 고용조정을 통해 경쟁력을
되살려야만 살아남을수 있다.

이때 고용조정을 거부한다면 그 기업자체가 도태될수 밖에 없는 것이며,
넘어지는 기업에 고용을 지키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일이다.

문제는 노동력이동에 대한 안전장치다.

스페인 프랑스 독일 등 유럽 나라들의 실업률은 12%에 이르고 있지만,
고용보험제도와 재훈련 재배치제도가 실업을 뒷받침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실업률은 이보다 낮지만 이러한 안전장치가 없기 때문에
우리의 실업은 모두 "굶는 실업"이 돼있다.

지금부터 노동력이동에 대한 안전장치마련에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온 식구가 노동시장에서 일하도록 노동참여율을 높이는 이른바
맞벌이 시대를 열어야 한다.

그래야만 임금인상 없이도 국민생활 향상이 가능하게 되어 경제성장과
생활향상을 병행할수 있는 것이다.

< 중앙대 교수 >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