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기보다 작품성에 따라 그림값을 매긴다"

서울 종로구 사간동 갤러리현대(734-8215)가 2~22일 "호당 가격없는
작품전"을 개최, 눈길을 끈다.

이번 전시는 작품의 크기에 따라 일률적으로 적용하던 호당가격에서
벗어나 작품별로 가격을 책정하는 특별기획전.

출품작가는 이대원 권옥연 김창열 김종학 김흥수 박서보 백남준 서세옥
이세득 이우환 홍정희 황영성 이왈종 주태석 노상균씨 등 70여명으로
대표적인 원로 및 중견작가들이 망라돼 있다.

일본에서 통용돼 온 가격체계를 그대로 받아들인 호당가격제는 그림의
크기에 따라 호수를 매겨 그림값을 정하는 제도.

예를들어 호당 30만원인 작가의 10호짜리 작품은 작품성에 관계없이
무조건 3백만원으로 그림값이 매겨져왔다.

이러한 호당가격제는 작품성보다는 크기를 중시, 불합리할 뿐만 아니라
그림값을 무분별하게 올리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해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에따라 한국화랑협회는 지난 연말 IMF한파이후 꽁꽁 얼어붙은
미술시장을 활성화시키기위해 회원들에게 호당가격제를 철폐하고 작품성
위주로 가격을 책정하자는 공문을 보낸 바 있다.

그러나 화랑과 미술애호가들이 워낙 호당가격제의 관행에 깊게 젖어있어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실정.

더욱이 92년이후 전반적인 경제불황으로 기업 및 법인이 소유했던
미술품이 급매물로 쏟아져 나오면서 미술시장에서도 가격의 이중구조가
형성돼 호당개념이 큰 혼란을 빚어왔다.

따라서 국내 정상급 화랑인 갤러리 현대의 호당가격제 폐지선언은
미술계의 뿌리깊은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갤러리현대 박명자 대표는 "호당가격제는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통용되지
않고 있다"고 밝히고 "작가와 화랑이 함께 협의해 보다 발전적인
가격구조를 이뤄내보자는 게 이번 전시회의 취지"라고 말했다.

한편 갤러리현대는 이번 전시기간중 매주 일요일 오후 2시 "일요문화사랑
대담"을 마련한다.

초청강사는 8일 영남대 유홍준 교수(호당가격이 왜 무의미한가), 15일
문화기획가 강준혁(IMF시대에 적응해가는 미술), 22일 미술평론가 김홍희
(현대미술의 대중적 소통문제)씨.

< 백창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