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면 팔수록 손해입니다"

빌레트를 수입, 철근을 생산하는 압연업체들은 "빌레트 수입가격(운반비 등
포함 t당 44만원선)보다 철근시판가격(t당 약 38만원선)이 더 싸기 때문에
헛장사"라고 말한다.

철근은 수출비중도 8%에 지나지 않아 수입원가부담을 거의 대부분 떠안을수
밖에 없다.

앞으로 2개월안에 환율이 1천4백원대로 떨어지지 않으면 생산중단이
불가피하다.

고환율추세가 수그러들지 않으면서 수입원자재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른데다
적기확보마저 어려운 상황이다.

그나마 올들어 원유 옥수수 소맥 알루미늄 구리 등의 국제가격이 속락하고
있어 위안이 되지만 문제는 환율이다.

환율이 달러당 1천6백원대에서 좀처럼 내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현대 삼성 대우등 종합상사 수입담당자들은 "지금 환율로는 주요 원자재의
국제시세가 단기간(3~5월중)에 20~30% 추가로 더 떨어지지 않는 이상 국내
기업들이 원가부담을 상쇄시키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산업자원부 집계에 따르면 고철에서부터 알루미늄괴 아연괴 원면 원피
원당 등 주요 원자재의 재고가 적정수준의 50~81%선에 머물고 있다.

전기로제강업체의 경우 작년말에 중단됐던 미국산 고철수입이 가까스로
재개돼 적정재고의 67%선을 겨우 유지하고 있다.

고철전문수입상인 인천철강무역의 박순기 사장은 "내수부진 덕분(?)에
3월 대란으로 번지지는 않겠지만 수입가격과 적기확보가 문제"라고 진단했다.

수입금융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것도 원자재조달의 결정적인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유압기기를 생산하는 부평유압기기의 김영훈 영업이사는 "연초에 비해
수출입금융이 많이 풀렸다고는 하지만 가장 아쉬운 수입유전스개설은
중소기업엔 그림의 떡"이라고 하소연했다.

은행들이 수입신용장을 개설해 주는 경우에도 각종 수수료를 경쟁적으로
올려 기업들의 원자재 확보에 이중부담을 주고 있다.

최근 무협조사에 따르면 수입신용장개설 수수료등 기업들의 외환관련 각종
수수료부담이 매출액의 평균 4%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은행의 대외신용이 원상복구되지 않은 것도 원자재조달에 지장을 주고
있다.

메탄올 등 일부 유화제품의 경우 뉴질랜드 인도네시아 등지의 공급자들이
국내은행에서 개설한 신용장을 꺼리고 있다.

사실상 현찰거래를 하고 있는 셈이다.

내수부진에 원자재조달난이 겹치자 제조를 포기하고 원자재를 되파는
사태까지 빚어지고 있다.

서울 청계천의 일부 인쇄업체들은 종이값이 작년 11월이후 45%나 올랐지만
새학기 참고서수요가 바닥을 헤매자 재고종이를 팔아 영업부진을 메우고
있다.

원자재가격부담이 급증하자 메이커와 부품업체간의 갈등도 커질수밖에 없다.

저항기업체들은 "원재료인 세라믹로드의 수입가격은 1백% 올랐는데 제품의
납품가격은 반대로 인하압력을 받고 있어 납품할수록 손해"라고 불평하고
있다.

환차손 다툼도 치열하다.

전자부품업체들은 "일부 메이커들이 고정환율을 적용, 환차손을 떠넘기고
있다"고 주장하고있다.

섬유업계의 경우엔 공장가동에도 지장이 생겨 수출차질이 우려되고 있다.

모방업계의 경우 수출주문을 받았지만 생산을 포기하는 업체도 있다.

양모의 수입가격이 작년말에 비해 거의 1백% 가까이 올라 도저히 수출채산
을 맞출수 없어서다.

의류업계도 마찬가지다.

내수원단값이 올들어 20%정도 올랐지만 수출단가는 반대로 더 떨어졌다.

주로 중국에서 들여오는 린넨등 소재직물류의 경우 수입상담이 3월 성수기
인데도 재개될 조짐이 없다.

국내수요업체들의 주문이 두절된 상황이 작년 11월이후 계속되고 있다.

삼베 모시류 등의 올여름 내수전망이 극히 불투명한데다 수출단가도 계속
내림세여서 공장돌리기를 포기한 제조업체들이 속출하고 있다.

소재수입상사들은 "전면적인 수입단절이 3~4개월이상 길어지면 원자재
공급선을 완전히 놓치게 된다"고 걱정하고 있다.

산업자원부 집계에 따르면 순면사와 혼방사는 작년대비 생산량이 30%정도
줄었다.

염료의 경우 IMF체제이후 수입 원자재값이 배이상 오른데다 연말연시에
재고확보가 안돼 생산가동률이 70%선으로 떨어졌다.

<이동우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