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초가 되면 으레 떠오르는 화제가운데 하나가 촌지문제다.

초등학생과 중고생 부모 할것 없이 선생님께 성의 표시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가 아이가 당한 일을 털어놓으며 흥분하고 개탄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부정적인 얘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정중한 편지와 함께 봉투를 되돌려 주거나 집안형편이 어려운 학생의
등록금을 대신 내준 좋은 선생님의 사례도 적잖이 거론된다.

그럼에도 일부교사들의 촌지수수 관행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말 그대로
"관행"이라는 생각이 강한데다 신분보장이 너무 잘돼서 그렇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어지간한 일쯤이야 그냥 지나가는 것은 물론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일을
일으켜도 다른 학교로 전보되면 그만이라는 인식때문에 좀처럼 근절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학부모로부터 받은 선물과 촌지의 내역을 기록했다는
촌지기록부 문제로 물의를 빚고 해임됐던 초등학교 교사가 교육부
교원징계재심위원회에 재심을 청구, 3개월 감봉처분만 받고 다른 학교로
복직한 사실이 알려졌다.

이유인즉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것이라는데 소식을 들은 사람들 대다수가
사실여부에 관계없이 다른 직장이었다면 과연 가능한 일이었겠는가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새 학기를 맞아 서울시 교육청이 촌지수수 관행을 줄이기 위해 본청및
지역교육청에 선물및 촌지 반환접수처를 개설하고 일선학교에도 설치를
권장, 선물과 촌지를 돌려줄수 있도록 하겠다는 방안을 내놓았다.

얼마나 실효를 거둘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나 직접 돌려주기 어려웠던
선생님들에게 반환의 기회를 주게 됐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안으로 보인다.

하지만 중요한 건 반환접수처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처음부터 안주고
안받는 풍토를 조성하는 일이다.

우리 사회에는 관행이라는 이름 아래 용서되고 묵인되는 일이 너무 많다.

교사에게 주는 촌지 역시 "지금까지 그래 왔다"는 말로 합리화돼온 인상이
짙다.

굳이 IMF시대를 핑계대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제 사고와 생활의 틀을 바꿔야
한다.

그래야 "촌지 반환접수처"라는 우스꽝스러운 창구같은것도 아예 필요없게
될 터이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