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가 다시 긴장하고 있다.

금융계 인사를 자율에 맡기겠다던 새 정부의 방침에 따라 "자율"로 인사를
했지만 정부가 사실상 낙제점을 줬기 때문이다.

청와대와 정치권이 은행장인사에 대해 강도높게 비판한데 대해 은행들은
그 진의를 확인하느라 분주하다.

은행장 선출시스템을 바꾸는데 그치지 않고 중도퇴진 은행장이 또 생길지
모른다는 우려가 팽배해 있다.

특히 은행장인사를 바라보는 새 정부의 시각은 앞으로 있을 정부투자기관 등
공기업인사 인사에서도 시금석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유난히 관심을 끈다.

금융계는 지난 93년 문민정부가 들어설 당시 두달동안 서울 보람 제일 외환
동화 등 5명의 은행장들이 줄줄이 날아간 상황이 재연되는게 아니냐는 의구심
을 품고 있다.

명분이야 그럴 듯하지만 은행장 사정이 또 시작되고 있다는 경계감이다.

새 정부의 인사룰은 대체로 이렇게 요약된다.

"자율은 최대한 주되 부실경영책임은 엄중히 묻고 반개혁적 인사는 배제
한다"

이 원칙을 이번 은행장 인사에 대입할 경우 어떤 결과가 나올지에 대해
금융권은 긴장하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일부 은행들은 적자가 누적된데다 BIS(국제결제은행)기준 자기
자본비율도 턱없이 낮은 실정이어서 결과를 자신할수 없는 상황이다.

일단 정부의 직접적인 인사개입은 없을 것이란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인사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새정부가 제시한 원칙을 스스로 깨트리는 결과이기도 하다.

이보다는 제도개선을 통해 구시대 인물을 밀어내는 형태가 유력한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은감원도 "은행장 추가사퇴 대상은 BIS비율이 8%를 밑돌아 경영개선조치나
권고를 받은 곳중에서 선정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은감원은 이들 은행이 제출할 경영정상화 계획에 부실경영에 대한 책임
여부가 포함됐는지를 중점 검토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경영정상화계획이란 카드로 은행장들을 압박할 경우 은행장들은
시일을 끌기보다 서둘러 자진사퇴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금융권은 전망하고
있다.

일부은행장은 이미 이규증 국민은행장과 정지태 상업은행장이 중도에
물러날 때 동반 퇴진하는 방안을 심각하게 검토했던 터다.

당시엔 "대안이 없으니 그냥 계속하라"는 주변의 분위기에 밀려 가부간
결정을 내리지 못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진 것이다.

그러나 은행주총을 끝낸후 하룻만에 다시 등장한 "바람몰이식 은행장 축출"
분위기를 달갑지 않게 보는 시각도 많다.

자율인사라곤 했지만 결국은 인사개입의 또다른 형태로 보는 시각들이다.

이런 점에서 "사람을 바꿔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도 좋지만 진정한
자율의 바탕이 마련돼 있는지 반성할 일이다"는 한 은행임원의 말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이성태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