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필 총리지명자 국회동의안이 상정된 2일 국회는 시종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김수한 국회의장이 오후 3시45분에 개표시작을 선언, 곧바로 정호영 의사
국장의 호명에 따라 의원들의 표결이 시작됐다.

그러나 한나라당 의원들이 기표소에 들어간 뒤 곧바로 나오거나 일부
의원은 기표소에 아예 들어가지 않는 등 백지투표 움직임을 보이자 여권
의원들이 즉각 강력히 반발하며 저지에 나서는 등 진통을 겪었다.

한나라당 강성재 박종우 의원 등은 기표소에 들어가자 마자 2~3초도 되지
않아 나왔으며 일부 의원들은 아예 기표소에 입장하지 않았다.

또 김철 김영선 의원 등은 상대적으로 "긴 시간"기표소에 머무르는 등
한나라당이 소속 의원들에게 복합적인 행동지침을 시달한 듯 했다.

"변칙투표"가 계속되자 국민회의와 자민련의원들이 한나라당 의원들과
서로 밀치는 몸싸움을 벌였으며 일부 여권의원들은 한나라당 의원들이
기표소에 들어 가서도 뒷문을 닫지 않자 대신 문을 닫아주는 등 백지투표를
저지하기 위해 다각도로 움직였다.

김의장은 여야 의원들의 충돌움직임이 점차 가열되고 장내에 극심한
소란이 일자 "질서를 유지해달라"고 거듭 촉구했으나 분위기는 쉽게 가라
앉지 않았다.

이에 자민련 구천서 의원은 3시51분께 의장석 앞으로 다가가 한나라당
표결행태에 대해 비난하며 제지를 요청했으며 같은당 이인구 의원은
의사국장을 몰아내는 등 의사진행 봉쇄에 나섰다.

이에 앞서 한나라당은 본회의 시작 30분전인 오후 1시30분부터 의원총회를
소집, 투표방식을 놓고 격론을 벌였고 일찌감치 행동지침을 정한 국민회의
자민련 등 여권은 본회의장에 앉아 한나라당의 의총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날 본회의는 한나라당의 의총이 지연되면서 예정보다 1시간20여분이나
늦은 오후 3시20분께부터 시작됐다.

본회의 직전 한나라당 17, 국민회의 10, 자민련 9명 등 모두 36명의
의원들이 무더기로 5분 자유발언을 신청, 기선잡기 싸움에 나섰다.

그러나 여야는 총무간 접촉을 통해 효율적인 의사진행을 위해 모두 4명만
발언을 허용키로 합의했다.

먼저 발언에 나선 한나라당 김찬진 의원은 "오늘 국회에서 임명동의안이
안될 경우 서리체제로 가겠다는 여권의 의도는 헌법규정과 삼권분립 정신을
유린하는 처사"라며 "국무총리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현행 헌법규정에 따라 국무총리 서리체제는 위헌"이라고 강조했다.

김의원은 지난 88년 강영훈 총리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처리할 당시 야당
이었던 김대중 김영삼 총재가 백지투표를 한 예를 상기시키며 "국회의
표결은 고도의 정치행위이기 때문에 반드시 무기명 투표에 의해 비밀을 유
지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국민회의 정희경 의원은 "대통령 취임후 6일이 지났지만 내각
구성도 못한채 표류하고 있다"며 "모든 안건은 개개인이 헌법기관인 국회
의원의 자유의사에따라 투표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김재천 의원은 "김종필 총리지명자가 인준되는 것은
내각제 개헌의 시작"이라며 "대다수 국민들은 87년 국민 스스로 힘으로
얻어낸 대통령제를 지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의원은 특히 "김종필 명예총재는 IMF사태를 극복하고 21세기 정보화
사회를 준비하는데 부적합한 인물"이라고 주장, 여당의원들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이에 앞서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각각 의원총회를 열어 한나라당이 무기명
비밀투표가 아니라 백지투표나 기권 등 편법적인 방식으로 의사표현을 할
경우 즉각 국회의장에게 의사진행발언을 요청, 한나라당의 투표가 불법
무효임을 주장하고 투표행위의 중단을 즉각 촉구키로 했다.

이에 따라 양당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 "한나라당 불법투표 실력저지조"를
편성, <>기표소 <>명패함 <>투표함 인근에 각각 저지조를 배치했다.

이날 양당의 의총에는 국민회의측에서 김근태 배종무 의원이 불참한 반면
자민련에서는 당사자인 김종필 총리지명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의총이 끝난후 국민회의 박상천 총무는 "나도 오늘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며 확신이 서지 않는듯 초조한 모습을 보였다.

특히 자민련은 "JP총리인준"이 무기명비밀투표로 판가름 날 경우, 결코
낙관할 수 없는 상황임을 감안, 한나라당이 조금이라도 무기명비밀투표원칙에
어긋나는 행위를 할 경우에는 즉시 모든 투표행위를 무효화하기로 하고 각
의원들에게 행동지침을 전달했다.

국민회의도 의원들간의 몸싸움에 대비, 보좌진들을 국회 원내총무실로
불러 대기시켰다.

당사자인 김종필 총리지명자는 이날 오전 내내 청구동 자택에서 칩거하다가
오후에 의원회관에 나와 본회의 시작을 기다렸다.

< 허귀식.김태완 기자 >

한나라당은 국회본회의에 앞서 의원총회를 열고 김종필 총리 임명동의안을
무기명 투표로 부결시키기로 당론을 최종 확정했다.

지난주말부터 2일까지 당지도부와 총무단을 총동원, 소속의원 전원을
접촉한 결과 여당측에서 요구하고 있는 무기명 비밀투표에 들어가더라도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이날 의총에는 당소속의원 1백61명중 와병중인 최형우 조중연 의원과
김수한 국회의장 등 3명만 불참했을뿐 1백58명이 참석하는 결속력을 과시
했다.

조순 총재를 비롯한 지도부는 의총에서 당론이 관철되지 않을 경우 사퇴
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피력하며 당의 결속을 촉구했다.

또 김윤환 김덕룡 의원 등 계보 중진들도 발언에 나서 "JP총리"반대 당론
관철을 위해서는 단합이 필요하다고 독려했다.

당지도부는 회의에서 무기명 비밀투표에 참여키로 결정하면서 의원들에게
한글이나 한자로 "부" 표시를 할 것을 지시한뒤 "일단 기표소에는 들어가되
오래 머무르지 말라"며 백지투표나 기권 등의 방식을 택하더라도 무방하다는
행동지침을 내렸다.

한나라당은 이에앞서 이날 오전부터 중진협의회 원내대책회의 주요당직자
회의 확대당직자회의를 잇달아 열고 표결대책을 협의했다.

이 자리에서 이상득 총무는 "당론결집전에는 인준찬성파가 10여명에 달했
으나 당론결집이후엔 5명미만으로 줄어들었다"고 보고, 무기명 비밀투표에
자신감을 보였다.

다른 한 당직자는 "국민신당소속 8명중 3~4명이 반대표를 던질 것으로
보이며 국민회의 의원중에서도 일부 이탈자가 나올 것"이라며 동의안 부결을
낙관했다.

조총재도 "원칙적으로 정정당당한 방법인 무기명 비밀투표가 바람직하다"
면서 "소속의원들을 접촉해 본 결과 비밀투표를 하더라도 승산이 있다"고
자신의 의중을 밝혔다.

이에대해 일부 중진들은 무기명 비밀투표를 실시할 경우 자칫 총리임명
동의안이 가결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한나라당은 그러나 총무단의 표분석결과를 토대로 갑론을박끝에 "정정당당
하게" 총리 임명동의안을 부결시키기로 하고 표결전략을 무기명 비밀투표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김삼규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