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은 3일중 새내각을 출범시킨다는 방침아래 김종필 총리지명자
박태준 자민련총재와 2일 저녁 사실상 각료인선을 마무리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통령과 김총리지명자는 여소야대정국에서의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위해서는 원내 안정적인 의석확보가 시급하다는 점을 감안, 당내 인사보다
외부의 전문인력 기용을 늘리는 쪽으로 의견 접근을 본 것으로 전해졌다.

국회의 총리인준과 추경예산안처리문제 등과 관련, 여소야대 정국에서의
한계를 절감했기 때문이다.

이번 조각인선은 지난달 23일 저녁 김대통령을 비롯한 3자회동에서 경제
부처는 자민련, 비경제부처는 국민회의측 인사로 선정한다는 기본합의에
따라 이뤄졌다.

이에따라 대선이후 그동안 줄곧 강력한 후보로 거론되던 인사가 후순위로
밀리고 당외의 전문인사가 급부상하는 등의 지각변동이 이뤄졌다.

김대통령은 당초 전문성을 갖춘 능력있는 인사를 중심으로 야권을 포함한
각계각층의 다양한 인사를 각료로 기용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국민회의측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능력위주의 발탁"과 "정권교체의
상징성" 사이에서 상당히 고심해 왔다.

이 때문에 자민련측 추천인사의 윤곽은 비교적 선명하게 드러난 반면
국민회의측은 서울시장후보와 당지도체제개편 문제와 맞물려 막바지까지
진통을 거듭했다.

더구나 김종필총리지명자의 국회인준문제와 맞물려 야당을 설득하는데
총력을 모을수 있도록 당내인사의 기용폭에 대해선 극비에 부쳐왔었다.

김대통령은 또 자민련과의 공동정권정신을 지키면서 비리사건관련자에 대한
여론과 특정기업에 대한 편향문제등의 변수를 놓고 고심했다.

새정부 조각과 관련, 재경부장관의 경우 하마평이 나돌던 초기부터 김용환
자민련부총재가 가장 유력한 후보로 지목됐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고사로
막바지 진통이 가장 컸다.

김대통령은 김부총재가 비상경제대책위대표로 활약해 오면서 경제위기를
풀어나가는 추진력에 높은 점수를 줬다.

그러나 김부총재는 김종필 명예총재가 빠진 당에서 차기주자로의 길을
걷겠다는 의욕을 보였다.

자민련은 이규성 전 재무장관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김대통령은 이 전장관의 개혁의지를 확신하지 못한 상태여서 장고를 거듭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건교부장관에는 당초 조부영 인수위 경제1분과간사가 가장 유력한 후보로
지목됐으나 전문성과 지역안배 등을 고려, 막판에 정상천 자민련의원이
급부상했다.

보건복지부장관에는 여성몫으로 주양자 부총재가 일찌감치 확정된 것을
알려졌다.

정보통신부장관의 경우 초기에는 전문성을 감안, 신윤식 하나로통신사장
등 정통부차관출신이 하마평에 올랐으나 막바지에 자민련의 이정무 원내총무
가 급부상했다.

과학기술부장관도 학계인사들의 기용이 점쳐졌으나 강창희 자민련 사무총장
이 입각의사를 강하게 보여 1순위로 부상했다.

반면 국민회의측 인사의 경우 막바지까지 진통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회의측에서 3~4명씩만 당내인사를 기용해도 정치인의 몫이 지나치게
높아 첫 조각때부터 전문성과 참신성을 살리지 못하게 되는 부담을 안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운데 외교통상부는 경북출신의 박정수의원이 외교관출신인 홍순영
주독일대사보다 높은 점수를 딴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장관의 경우 박상천 국민회의 원내총무가 당내에서는 이의없는
1순위였으나 지역안배문제에 걸려 서울출신인 신창언 헌법재판소재판관이
급부상하는 모습이었다.

총무부와 내무부가 합쳐져 초대형부서가 된 행정자치부는 초기에는 나종일
경희대교수가 거론됐으나 강력한 개혁의지를 가진 인물이 필요하다는 여론에
따라 당내에서 한광옥 부총재를 강력히 천거하는 분위기였다.

이에따라 통일부장관에 박재규 경남대총장과 나종일 교수 등이 경합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인사의 경우 이용태 삼보컴퓨터회장 배순훈 대우프랑스본사사장 진념
기아그룹회장 박운서 한국중공업사장 등 입각후보에 올랐었다.

<김수섭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