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부의 첫 조각은 결국 총리서리체제가 되고 말았다.

국정공백 상태를 더이상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측면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선택은 어쩌면 불가피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건 총리가 각료임명을 제청한뒤 사임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진 첫
조각의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위헌시비를 피할수 있는 길인지는 모르겠으나 비상식적인 편법이 아니라고
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여기서 이런 "모양"이 나오기까지의 경위를 새삼스럽게 되새기고
싶은 생각도, 또 총리서리체제를 둘러싼 여야간 적법성공방에 어느 쪽을
편들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러나 지금의 여야 대치국면이 지속되고, 총리서리체제가 장기화되는 것은
누구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지적하고자 한다.

산적해 있는 경제현안타개를 위해서도 그렇고, 현상태가 장기화할 경우
정치권전체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혐오가 증폭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도
여야의 인식전환이 요구된다고 본다.

정치권은 하루빨리 국회를 다시 열어 비정상적인 총리서리체제를 바로
잡아야 한다.

인준을 거부하든, 임명동의안을 가결하든 양단간에 결론을 내야한다.

법원에 총리서리 직무집행정지 가처분신청을 내겠다는 한나라당 방침은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이 문제는 하루속히 정치권이 국회에서 풀어야지 법원으로 옮겨 장기간
논란을 벌여야할 일이 아니다.

김종필 총리서리임명에 앞서 발표된 17개부처 장관명단을 보면 정치인
출신이 많다는 점이 우선 눈에 띈다.

전.현직 의원과 도지사출마를 위한 경선참여자 등 정치인이 12명에 달한다.

우리는 이같은 구성이 청와대 대변인이 설명한 것처럼 도덕성 개혁성
전문성 참신성을 고려한 발탁이라고는 보지 않지만, 그렇다고 잘못됐다고
단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받아들인다.

정당정치가 민주주의의 기본이라고 볼때 당인,곧 정치인기용을 문제삼을
이유는 없다.

선거를 통해 함께 심판받을 정당인들의 참여비중이 높아진 것은
책임정치의 구현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

그러나 행정경험이 없고 전문성이 결여된 정치인 장관의 경우 그 결과가
좋지 못했던 선례가 적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바로 그런 측면에서 잇달아 단행될 차관급 인사에서는 이 점을 특히
감안해야할 것으로 본다.

직업관료들을 철저히 장악할수 있는 행정경험이 많은 차관은 정치인
장관에게 꼭 필요하다고 본다.

대통령과 장관의 인간적인 관계, 그리고 각부처와 대통령비서실의
역학관계가 장관들의 행동반경을 결정하는 변수가 될 것 또한 분명하다.

이 점은 특히 대통령이 배려해야 할 과제다.

각부처장관이 그 부처 행정에 대한 최고책임자가 돼야할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장관은 많지만 국무위원은 없다는 말이 나오는 등의
부처이기주의에 사로잡히지 말아야할 것 또한 물론이다.

어느때보다 어려운 여건에서 어렵사리 출범한 새내각이 정말 잘해주길
기대한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