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휘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장기에는 우리는 다 죽고 없다"

이것은 이상적인 장기균형상태에만 관심을 두고 단기에 일어나는 불균형의
문제들은 경시하는 신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을 케인스가 비판한 말이다.

장기는 단기의 연속이고 반드시 단기를 거쳐야만 도래한다.

지금 전례없는 경제위기를 맞아 금융산업과 기업의 구조조정이 추진되고
있는 한편에서는, 기업도산과 조업단축이 속출하고 실업이 누증하는 등
구조조정의 비용이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구조조정이 경제를 근본에서부터 새로 구축하기 위해 절대 필요하다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구조조정은 단호하게 추구되어야 한다.

그러나 구조조정의 효과를 기대할수 있는 장기가 도래하기까지는 실물
경제가 지나치게 위축되지 않도록 정책조합의 묘를 모색하는 것도 못지 않게
중요하다.

최근 통계청의 발표는 모두의 우려가 현실로 전개되고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지난 1월중 산업생산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0.3%가 감소하고
기계수주는 31%나 격감하였으며 실업자는 이미 1백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2월의 무역흑자가 사상최대라고 하지만 이는 수출을 위해서도 중요한
원자재수입이 30%나 줄어드는 등 경기수축 요인들에 기인한 것으로 좋아할
일만도 아니다.

더욱이 본격적인 경기후퇴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여, 기업도산과 실업은
앞으로 더욱 격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 결과 올해 경제성장률은 정부와 IMF의 수정전망치인 1%에도 못미치는
마이너스 성장으로까지 떨어지리라는 민간경제연구소의 전망이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진다.

우리경제는 지금 총공급에 비하여 총수요가 턱없이 부족한 전형적인
케인스적 불황상태에 빠져들 조짐이 짙다.

이 곤경을 타개해나가는 데 있어서는 신고전학파적 접근방법은 실물경제의
위축을 필요이상으로 장기화시키고, 그럼으로써 위기탈출을 오히려 어렵게
만들 위험이 있다.

민간소비의 급속한 감소가 더한층 기업의 매출액감소, 도산및 실업증가,
소득감소라는 나선형적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지만, 실업이
증가하고 실질소득이 격감하는 상황에서 가계가 소비억제로 이에 대처하고
있는 것은 합리적이고도 불가피한 선택이므로 정부는 민간소비 위축을
상쇄할 다른 총수요증가를 도모해야 한다.

여기에는 원리상 투자 정부지출 그리고 수출이 있다.

민간소비 위축에 더하여 이자율이 너무 높아 기업의 투자는 그대로 둘
경우 더욱 줄어들 것이 불을 보듯 뻔하며,정부지출마저 감소로 책정되어
있다.

수출은 환율의 평가절하로 늘어나기는 하겠지만 우리의 경쟁국 통화들도
같이 평가절하된 데다 아시아 경제의 위축이 초래하는 선진국경기에 대한
압박으로 기대만큼 증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처럼 민간부문에서의 자율적 총수요증가를 기대하기 어려울진대 이제는
정부가 강력한 내수 부양책을 신중하게 모색해야 할 때다.

무엇보다도 먼저 금리인하를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한다.

정부도 현재와 같은 고금리의 부작용을 잘 인식하고는 있으나 IMF측을
설득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듯하다.

현재의 고금리는 신규투자는 고사하고 기업의 구조조정에 따르는 고통을
지나치게 확대시키고 도산과 실업을 필요이상으로 악화시키는 역기능이
더 강하다.

기업의 구조조정도 그야말로 숨은 쉴수 있으면서 해야 하는데 지금의
금리수준과 자금사정은 기업이 숨쉴 여유조차 허용하지 않는 형국이다.

환율이 충분히 안정되기 전에는 금리인하가 불가하다는 IMF측 논리에도
일리는 있지만 외환위기가 최악의 고비를 넘기면 경기를 적정수준으로
유지하는 것도 못지 않게 긴요하다.

실물경제가 계속 악화되고 최악의 경우에는 붕괴마저 우려되는 상황에서는
아무리 높은 금리라도 환율을 안정시키는 데는 무력할 것이다.

정부의 재정긴축도 재고할 여지가 있다.

현 경제위기의 성격상 긴축재정이라는 고전적 IMF처방이 적절하지
못하다는 의견이 국내외에 적지 않았거니와 도로와 항만건설이나 정보화
관련 투자 등 장차 우리산업의 경쟁력 강화에 직접 기여할수 있는 공공지출
수요가 허다한 마당에서야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제는 어느정도의 내수부양책을 모색할 시점이다.

시기를 놓치면 불황의 장기화와 산업기반 붕괴의 위험을 피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