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거래에는 쌍방이 필요하다.

주고 받는 주체가 있어야 한다.

은행이 있다면 기업도 존재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은행돈은 그냥 은행돈일 뿐이다.

은행의 기업지배가 성공하려면 기업의 생존이 밑바탕돼야 한다는 얘기다.

은행과 기업의 관계는 금융시장 환경변화에 따라 달라져 왔다.

자금이 모자랄 때는 은행이 상전 노릇을 했다.

반면 돈이 남아돌 때엔 기업이 우위였다.

금융자율화가 진전되면서 기업우위 현상은 두드러졌다.

금융기관 숫자가 늘어 경쟁이 치열해지자 수급균형이 무너졌다.

덩치 큰 기업들은 얼마든지 쉽게 돈을 끌어다 썼다.

대출때 빡빡하게 구는 은행들과는 거래를 끊었다.

재무구조가 튼튼한 기업들은 더욱 그랬다.

종금사등 2금융권이 각광을 받았다.

제출서류나 대출심사가 은행보다 간편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물론 기업들은 그 댓가를 톡톡이 치뤘다.

종금사들은 자신들의 자금사정이 어려워지자 그 부담을 기업들에게 그대로
전가했다.

현금유동성이 좋다며 2금융권과 거래를 많이 했던 기업들은 그래서 좌초
됐다.

기아사태 이후 종금사들이 무자비하게 자금을 회수한 탓이다.

은행들은 거래도 안터준 야박한 곳이라며 등을 돌렸다.

기업과 은행의 신뢰관계가 무너진 것이다.

신뢰관계가 무너진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다.

물론 금융기관의 잘못이 많다.

철저한 자금운용과 리스크관리를 하지 못한데 1차적인 책임이 있다.

그러나 기업들도 해야할 일이 적지 않다.

아직은 기대수준 이하다.

은행에서 협조융자를 받아간 기업들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

이들 모두는 협조융자 조건으로 "뼈와 살을 깎는" 자구노력을 약속했다.

변화를 약속하고 돈을 얻어간 셈이다.

과연 얼마나 이뤄졌을까.

"한화나 고합그룹은 높은 평점을 줘야 한다. 주력분야까지 매각하는 등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한일은행 이명수 이사)

그러나 대부분은 아직 실행이 지지부진하다는게 금융권의 평가다.

여기에 대해선 기업들도 할말이 많은 눈치다.

"울며겨자먹기로 알짜배기 부동산과 생산시설을 내놓았는데 경기침체로
안팔리고 있다. 이런 상황을 기업들의 의지부족으로 몰아가는 것은 곤란
하다"(D그룹 관계자)

방만한 차입경영이라는 지적에도 나름대로 이유를 댄다.

"증자는 증시에 영향을 준다고, 저리의 해외자금은 인플레이션 우려가
있다며 직접차입을 금지했다. 금융기관 차입 외에 다른 방도가 있었겠는가"
(H그룹 자금담당)

"심사를 소홀히 한 은행탓"이라거나 "자신들이 생존하기 위해 BIS
(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율을 맞추려고 기업들을 도산시킨다"는 불평의
소리도 나온다.

결국 기업과 은행 사이에 상당한 인식차가 존재하는 셈이다.

따라서 은행지배를 통한 산업 구조조정이 성공하려면 은행.기업간의 신뢰
구축이 필요하다.

"기업들에게 PR(광고, Public Relation)이나 IR(투자자 설명회, Investors
Relation)뿐 아니라 CR(채권자 설명회, Creditor Relation)도 필요"
(향영21C리스크컨설팅 이정조 사장)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고려합섬과 한일은행은 지난해 12월 하순부터 올해 1월 중순까지 의견차를
벌이는 작업을 벌였다.

말그대로 우리나라 첫번째 CR인 셈이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일시적인 자금난만 피하면 생존할 수 있다며 회사 사정을 감추는 것 없이
공개했다. 협조융자를 해주지 않을 수 없었다"고 은행 관계자는 회고했다.

IMF(국제통화기금)체제 이후 기업들에겐 직접금융의 길이 훨씬 넓어졌다.

그렇지만 기업들은 아직 정비할 여지가 많다고 말한다.

외자유치도 마찬가지다.

외국인이 국내 기업을 M&A(기업 인수.합병) 할 때 적용하는 규제도 완화
해야 한다.

그럴 경우 기업의 자구계획은 더 빨리 진척될 수 있다.

"뛰어놀 나이의 아이를 방에만 가둬두면 운동부족이 된다"는 H그룹 자금
담당 임원의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박기호 기자>

[[[ 협조융자 기업들의 자구 추진상황 ]]]

<>.해태

<>주거래은행 : 조흥
<>협조융자시기 : 97.10.14(11.10)
<>규모 : 547(453)억원
<>자구추진상황 : - 소규모부동산 매각 진행중
- 자회사및 계열사 매각 진행중


<>.뉴코아

<>주거래은행 : 제일
<>협조융자시기 : 97.10.20
<>규모 : 545억원
<>자구추진상황 : - 재산보전처분으로 부동산매각 중단
- 인력 2,100여명 감축

<>.진도

<>주거래은행 : 서울
<>협조융자시기 : 97.11.19
<>규모 : 754억원
<>자구추진상황 : - 인원1,800여명 감축
- 진도종건 진도산업개발 합병
- 진도종건 진도물산 합병(하반기)
- 삼성동 사옥(싯가 1,300억원) 등 매각 추진중


<>.신호

<>주거래은행 : 제일
<>협조융자시기 : 97.11.27
<>규모 : 800억원
<>자구추진상황 : - 부동산 일부매각(52억원)
- 해외증권 매각(15억원)
- 계열사 통폐합(23->18개)
- 인력 2,800여명 감축

<>.한화

<>주거래은행 : 한일
<>협조융자시기 : 97.12.17(98. 2.10)
<>규모 : 3,000(4,420)억원
<>자구추진상황 : - 한화바스프 주식매각(1천억원)
- 한화에너지 매각 진행중(발전부문 3월 예정)


<>.한일

<>주거래은행 : 한일
<>협조융자시기 : 97.12.31
<>규모 : 500억원
<>자구추진상황 : - 부동산 계열사 매각 등 자구계획 진행중

<>.동아건설

<>주거래은행 : 서울
<>협조융자시기 : 98. 1.10
<>규모 : 2,200억원
<>자구추진상황 : - 동아TV 등 계열사 매각 추진중
- 인천 매립지일부 학교부지 매각 추진중


<>.고합

<>주거래은행 : 한일
<>협조융자시기 : 98. 1.26
<>규모 : 3,000억원
<>자구추진상황 : - 정보통신회사인 KNC 매각완료(32억원)
- 독일현지회사인 엠텍 매각진행중

<>.신원

<>주거래은행 : 외환
<>협조융자시기 : 98. 2.11
<>규모 : 2,000억원
<>자구추진상황 : - 부동산 2~3건 매각협상중
- 계열사 통폐합(17->4개) 진행중


<>.우방

<>주거래은행 : 서울
<>협조융자시기 : 98. 3. 3
<>규모 : 1,100억원
<>자구추진상황 : - 계열사 매각및 부동산처분계획

*자료 : 각 은행, ( )는 2차융자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