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신] 3월의 호국인물 '진두태 중위'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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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기념사업회는 한국전쟁 당시 혁혁한 전공을 세운 고 진두태 해병대
중위를 "3월의 호국인물"로 선정, 6일 오전 전쟁기념관에서 전도봉
해병대사령관과 유가족 등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식을 가졌다.
진중위는 1949년 해병대 창설요원으로 자원, 병조장(원사)이 된 뒤 6.25
전쟁이 발발하자 정찰대장을 맡아 장항 부근에서 활동하다 북한군 포로가
됐다.
그는 아군의 항공폭격을 이용해 탈출에 성공, 적 점령지에서 3개월 동안
은신해 있다가 인천상륙작전때 부대에 복귀해 소위로 특진했다.
그는 이후 원산상륙작전을 비롯 고성 함흥지구 전투에 참가하는 등 혁혁한
전공을 세웠으며 51년 3월 대관령 공격작전에서 정찰중 적의 공격을 받아
부하들이 안전하게 철수하도록 혼자 남아 엄호를 하다 전사했다.
정부는 1계급 특진과 함께 충무 무공훈장을 추서했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7일자).
중위를 "3월의 호국인물"로 선정, 6일 오전 전쟁기념관에서 전도봉
해병대사령관과 유가족 등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식을 가졌다.
진중위는 1949년 해병대 창설요원으로 자원, 병조장(원사)이 된 뒤 6.25
전쟁이 발발하자 정찰대장을 맡아 장항 부근에서 활동하다 북한군 포로가
됐다.
그는 아군의 항공폭격을 이용해 탈출에 성공, 적 점령지에서 3개월 동안
은신해 있다가 인천상륙작전때 부대에 복귀해 소위로 특진했다.
그는 이후 원산상륙작전을 비롯 고성 함흥지구 전투에 참가하는 등 혁혁한
전공을 세웠으며 51년 3월 대관령 공격작전에서 정찰중 적의 공격을 받아
부하들이 안전하게 철수하도록 혼자 남아 엄호를 하다 전사했다.
정부는 1계급 특진과 함께 충무 무공훈장을 추서했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