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이 21세기 한국의 미래 국가상을 그리며 두뇌강국을
역설했다.

장기적인 국가 발전을 위해서는 무형의 지식과 정보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 대통령 취임사와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한국의 경제성장이 전적으로 생산요소의 투입량에만 의존해 왔다는
지적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라고 판단된다.

이제 두뇌강국을 말하자면 교육문제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알몸뚱이로 태어난 인간은 교육을 받음으로써 교양과 지식, 그리고
생산성을 가진 인간으로 가꾸어진다.

물론 교육이 학교 교육(schooling)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학교 교육을 받았지만 교육되지 않은 사람도 있고 학교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잘 교육된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즈음의 교육, 특히 지식교육은 주로 학교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학교 교육이 중요하게 대두된다.

두뇌 강국을 위해서는 초등학교부터의 모든 교육 과정이 중요하지만
대학 교육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그래서 어제 오늘 거론된 사항이 아니지만 본격적인 대학 개혁과 지식
시장의 활성화가 필요한 것이다.

지금까지의 대학 교육 개혁은 지엽적인 논의만 무성할 뿐 정작 그 본질에는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대학의 가장 중요한 구성 요소인 교수들의 활동에 대해
아무런 조치가 취해지지 않고 있다.

대학의 설립목적이 새로운 지식의 생산과 그를 바탕으로 한 교육에
있다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구성원간의 화합도 이러한 목적을 더 효율적으로 달성하는데 필요한
것이지 그자체가 목적일 수는 없다.

그러나 한 번 교수가 되면 정년까지 아무런 문제없이 생존할 수 있는
사회가 교수 사회이고 보면, 경쟁적인 지식 생산과 지식 시장의 활성화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니 지식 시장이 발달하지 못하면
지식의 옥석을 가릴 수 없고, 특히 사회과학인 경우에는 흔히 집단화된
여론에 의해 지식의 옳고 그름이 판가름나게 된다.

사람들의 "정서"에 호소하는 지식이 정치적 힘을 얻게 되고 정부
정책으로 채택되게 마련이다.

지식 창조를 통한 두뇌 강국은 아예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대학에 도입되고 있는 새로운 조치들은 오히려
대학개혁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들이다.

대표적인 것이 교수 정년 보장제이다.

명실상부한 평가 제도가 구축되어 있지 않은 상황하에서 외형적으로
외국의 테뉴어(tenure)제도만을 모방한 교수정년보장제는 "게으름과
나태"의 온상인 교수사회에 더욱 편안한 안식처를 제공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또한 지식시장의 발달도 크게 저해받게 된다.

정년보장제 자체에 대한 재검토는 물론 그 실시에 따른 성과를 높일수
있는 후속조치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연봉제 조기도입등이 후속조치의 일환이 될수 있을 것이다.

교수정년 단축이 거론되고 있지만 이 또한 문제의 핵심을 피해가는
미봉책일 뿐이다.

정년을 단축하자는 것은 교수사회의 물갈이를 촉진시키고자 하는
의도이지만 이는 획일적인 방법일뿐 효율적인 방법은 되지못한다.

나이의 많고 적음이 학문세계에서의 생산성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교수평가제를 정확히 도입하는 것이다.

정기적인 평가결과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급부체계를 확립하는 것이다.

교수평가제가 거론될 때마다 누가 평가할 것이며 또 그 방법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의견이 분분하고 결론적으로 평가는 불가하다는
목소리가 온갖 명분으로 포장되어 지지를 얻고 있다.

그러나 평가주체가 없는 것도 아니고 평가방법을 만들지 못해서도
아니다.

기실은 평가기준을 통과할수 있는 사람들이 소수이기 때문에 다수는
지금까지의 전통적인 생존방식을 위협하게 될 새로운 평가제도 도입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자 하는 것이다.

최근 밝혀지고 있는 교수임용 비리도 경쟁과 생존에 대한 위협이 없는
교수사회의 실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한번 교수로 임용되면 도중하차할 염려가 거의없고 꽤 쓸만한 사회적
명망을 얻으니 그로 인한 렌트가 존재하게 된다.

그래서 교수가 되고자 하는 욕망은 강하고 비리현상은 그에 따른 당연한
결과이다.

모든 경제주체들의 구조개혁이 거론되고 있는 마당에 교육기업인
대학이라고 해서 예외일수는 없다.

더구나 장기적으로 국가의 존망을 결정하게 될 교육개혁이고 보면
복잡한 이해관계 때문에 차일피일 미룰일이 아니다.

대학도 구조조정의 아픈 작업을 서둘러야 할때이다.

그 구조조정은 비록 어려운 것이기는 하지만 대학의 주체인 교수사회를
개혁할수 있는 뇌관을 때리지 않고서는 공염불에 불과하고 두뇌강국은
한낱 연목구어일 뿐이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