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기업의 수출품이 얼굴없는 "하청제품"으로 뒷걸음질 치고 있다.

IMF한파속에서 기업들이 "무조건 수출을 하고 보자"는 절박한 상황에
몰리면서 하청(OEM:주문자상표부착방식)이든 자체 브랜드건 가릴 겨를이
없어졌다.

자체브랜드를 해외에서 팔려면 유통망관리, 브랜드이미지 홍보, 마케팅등
비용과 노력이 많이 든다.

게다가 모두 귀한 "달러"로 지출해야 한다.

반면 OEM수출은부대비용없이 대량수출이 보장된다.

OEM이 수출확대에는 직효약이란 얘기다.

90년대들어 매년 수천만원씩 쏟아부어가며 애써 자사브랜드 수출시장을
넓혀놓고도 다시 OEM으로 발길을 돌릴수 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게 전자업계.

삼성, LG, 대우등 대기업들은 지난3-4년간 해외 브랜드 이미지 제고에
전력, 자체브랜드 수출을 60-90%수준까지 올려놨다.

올해부터는 세계 일등제품의 각축장인 "미국시장"에서 "진짜 실력"을
겨려보겠다는 야심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공든탑"을 뒤로한채 전자업체들은 OEM수출에 매달릴수
밖에 없다.

해외기업의 OEM수주를 놓고 국내기업들간 출혈경쟁을 빚는 사례까지
나타날 정도다.

자체브랜드 수출전략아래 지난 3-4년간 OEM 거래선을 상당부분 끊었던
삼성전자는 올들어 다시 OEM전선에 뛰어들었다.

삼성은 90년대 중반 반도체 호황기 때부터 대대적인 해외브랜드 광고에
나서면서 "삼성"브랜드를 단 제품 수출을 80-90%까지 끌어올렸다.

그러나 최근들어 월풀(1억4천만달러어치 냉장고), 제록스(4천만달러어치
프린터)와 잇달아 하청계약을 맺는등 OEM수주에 전력하고 있다.

이에따라 올해 삼성전자의 자체브랜드 수출비중은 70%아래로 떨어질
전망이다.

올해부터 "LG"브랜드의 제품으로 미국시장을 중점 공략한다는LG전자의
"아메리칸 드림"도 벽에 부딪쳤다.

LG전자는 올해 북미지역에서 "골드스타"브랜드를 "LG"브랜드로 완전
전환하면서자체브랜드 수출비중을 현행 60%에서 70%까지 높인다는
방침이었다.

이계획은 IMF한파탓에 "장밋빛 꿈"으로 멀어졌다.

오히려 올해 자체브랜드 대 OEM수출비율이 4대6으로 역전될 판이다.

OEM비중이 절반이상을 차지하는 대우전자도 당초 자체브랜드 수출비중을
55%까지 높인다는 계획을 세웠으나 달성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OEM수출의 노하우로 자체브랜드를 개발,"탈(탈)하청"에 나섰던
의류업체들도 속속 OEM으로 회귀하고 있다.

십수년의 OEM노하우를 이용, 지난 90년 자체브랜드를 처음 내놓았던
신원이대표적인 예.

자체브랜드를 내놓은지 6년만인 지난 96년에는 전체 매출중 OEM수출이
36%로 줄어들고 자체브랜드(내수)가 63%확대되자 브랜드에 힘이 붙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래서 중국에 자체 브랜드 매장을 내고 미국시장 진출준비도 서둘렀다.

그러나 지난해말부터 이계획은 사실상 중단됐다.

달러확보가 최우선과제로 떠오르자 회사를 다시 OEM수출업체로 뜯어고치기
시작했다.

신원은 올해 매출중 75%를 OEM수출로 달성할 계획이다.

세계물산 역시 총 매출중 절반수준이었던 OEM수출비중을 올해는 70%까지
끌어올릴 방침이며 신성통상 역시 올해 OEM수출비중을 60-70%에서 90%로
높여 잡았다.

국민소득이 6천만달러시대로 추락하면서 수출구조도 80년대로 되돌아간
셈이다.

<노혜령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