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은 금감위가 정식 발족하지도 않았지만 무척 바쁘다.

지난 7일과 8일에는 은행감독원과 증권감독원으로부터 업무보고를 받았다.

9일에는 보험감독원과 신용관리기금의 업무를 챙겼다.

금감위발족은 4월.

하지만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이 자금공급을 꺼리는 등 금융중개기능이
사실상 마비돼 금감위가 처리할 현안은 산적해 있다.

은행과 기업이 맺고 있는 재무구조개선약정이 제대로 이뤄지는지를 관찰
하는 일도 금감위가 할 일이다.

각 감독기관은 통합을 앞두고 술렁이고 있다.

재정경제부장관 한은총재와 함께 금융계의 실세로 떠오른 이 위원장을 9일
오전 증권감독원에서 만났다.

-각 감독기관은 언제쯤 통합할 것인가.

"법에는 내년중 대통령령이 정하는 시기에 하게 돼있다.

하지만 가능한 빠른 시일안에 처리하겠다.

우선 금감위가 정식 발족하는 4월부터 6월까지 각종 감독규정을 재정비
하겠다.

통합에 필요한 전산시스템도 하루 빨리 개발하겠다.

통합에 필요한 기초작업을 6월까지 끝내고 9월까지 문제점 등을 파악한
다음 고칠 것은 고친후 곧바로 업무적인 통합을 이루도록 하겠다.

인원이나 조직의 통합등 완전한 통합은 빠르면 내년초에 끝내겠다"

-금감위가 우선 해야할 일이 많을 텐데.

"가장 급한 일은 금융중개기능을 회복시키는 것이다.

시장을 안정시키는게 급선무다.

금융기관의 부실해결과 기업의 구조조정작업을 은행에서 주도하도록 지도
하는 일도 시급한 현안이다.

이런 현안들은 특별대책반을 만들어 추진토록 하겠다.

특별대책반은 감독기관직원은 물론 금융기관직원 외부전문가들로 구성된다"

-은행과 기업이 맺고 있는 재무구조개선약정은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금감위나 정부가 사전에 은행과 기업이 맺는 재무구조개선약정을 검토
하거나 체크하지는 않겠다.

정부가 약정을 미리 보면 은행들에 면죄부를 주는 꼴이기 때문이다.

정부에서 승인한 것이기 때문에 은행이 책임안질수도 있다고 인식할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재무구조개선약정을 맺는 일 자체가 아니다.

그 약정이 어느정도 실현되고 기업의 재무구조를 실질적으로 얼마나 개선
시켰는지가 핵심이다.

때문에 약정을 맺고 실행되는 것을 공개토록 하겠다.

공개해 검증을 받으라는 얘기다.

이같은 투명한 과정을 통해 약정이행여부가 검증받게 되면 은행장들도 그
결과에 책임을 지게될 것이다.

은행마다 기업구조개선을 위해 한 노력이나 그 결과가 달라지면 은행마다
차별이 생기고 그로인해 은행주주나 투자자들이 은행들을 나름대로 평가할
것이다.

이 때문에 지금 기업과 형식적으로 약정을 맺고 있는 은행들은 앞으로
있을 공개후 평가를 고려해 실질적인 내용이 포함될수 있도록 새로 약정을
맺어야 할지 모른다"

-재무구조개선약정은 비밀이 보호돼야 한다는게 기업측 주장인데.

"비밀보호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삼성그룹이 50개 계열사를 갖고 있다고 치자.

그중 어떤 기업을 팔고 안팔고가 과연 비밀에 부쳐져야 하는가"

-기업들은 당장 수익이 나지 않지만 성장가능성이 큰 사업을 하려고 하지만
은행들은 우선 수익이 나지 않을 것을 우려해 대출을 꺼릴수 있다.

은행이 기업의 프로젝트를 제대로 심사할 능력이 없는 것 아닌가.

"은행의 심사기능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기업들이 당장 수익이 안나더라도 진짜 괜찮은 사업을 하려면 은행
승인을 얻어낼수 있는 방법이 적지 않다.

외국투자기관들로부터 자신의 신용으로 사업성이 있다는 판정을 받아내는
것이다.

또 사업추진에 필요한 자금조달방법도 스스로 마련할수 있다.

객관적인 자료를 토대로 대외적인 신용이나 공인을 얻어내면 국내은행이나
다른 투자가들이 돈을 대지 않겠는가.

현대의 제철사업을 예로 들어보자.

해외투자기관들에서 사업성이나 자금조달방안 등을 공인받아 오면 정부나
은행도 도와줄수 밖에 없을 것이다"

-재무구조개선약정에 대해 금감위는 어떤 역할을 하는가.

"기업의 재무구조개선이 제대로 추진되도록 은행들을 몰아갈 것이다.

은행들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기업재무구조개선을 주도할 수 있다.

예컨대 외국투자기관등과 제휴하는 방안이나 컨설팅기관 또는 자문기관
등으로부터 자문을받는 방법을 생각할수 있다.

국내은행과 외국투자기관과 제휴해 편드같은 것을 만들고 그 펀드를 통해
기업의 단기부채를 주식으로 전환하거나 정리하는 작업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이는 은행장의 리더십과 관계있는 일이다.

은행장이 리더십을 갖고 투명한 기준아래 이같은 구조조정작업에 앞장서야
한다.

어느 은행은 국제결제은행(BIS)기준만 맞춘다고 소극적으로 일하고 어느
은행은 기업구조조정에 앞장서면서 BIS기준을 지키는데도 애를 쓴다면 해당
은행주주들의 평가가 다를 것이다.

금감위는 은행이 그런 일을 주도적으로 하도록 몰고갈 것이다.

은행간 차별화도 곧바로 나타날 것이다"

-은행장선임이 자율화된 분위기를 틈타 부실경영을 한 일부 은행장들이
유임된데 대해 비난이 있는데.

"정부가 직접 간섭할 일은 아니다.

다만 구조개혁과 책임경영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보이지 않은 경영진이
있다는게 외부의 시각인 것만은 분명하다.

앞으로 각종 공시등을 통해 모든 경영이 투명하게 이뤄지면 은행간차별이
이뤄지고 책임을 지는 풍토가 마련될 것으로 본다.

은행은 대출업무만 치중하고 증권회사는 중개업무에만 관심을 두는 단선적
인 업무관행은 바람직하지 않다.

자회사를 통하거나 직접 외국기관과 제휴하는 등 여러가지 업무를 개발해
나가야 한다"

-각 감독원 규정은 어떻게 고칠 것인가.

"감독원직원들의 자의적인 해석이 개입될 소지가 없도록 각종 규정이나
기준은 투명하고 예측가능해야 한다.

모호한 규정은 모두 없애고 새로운 규제를 포함할때는 유효기간을 명시하는
일몰제를 적용하겠다.

규정만으로 어떤 제재조치가 내려지는 누구나 알수 있어야 한다"

-각 감독기관의 인원이나 조직을 어떻게 바꿀 예정인지.

"수직적인 체계를 부수겠다.

3-4단계의 보고체계로는 효율적인 집행이 안된다.

팀제를 적극 활용하겠다.

국제통화기금(IMF)의 나이스단장도 자기업무를 하면서 팀원을 이끌고
일하지 않느냐.

앞으로 감독기관의 간부들도 별도의 자기일을 맡으면서 구체적인 프로젝트
를 추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보공유가 제대로 돼야 한다.

이를위해 각 감독기관의 전산망을 통합하고 정보통신수단을 적극 활용
하겠다"

-감독기관통합으로 인원이 줄게 되나.

"아직 말할수 없으나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

수직적인 체계를 파괴하면 인원이 남게 된다.

그 인원들이 직접 자기 현업을 맡도록 하겠다.

통합감독원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직원들이 미국 등 선진국
감독기관들을 둘러볼 필요도 있다.

통합감독원은 전산망 등을 활용해 네트워크시스템같은 조직으로 운영하는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고광철기자>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