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부도가 급증하자 악화된 경영환경을 적극적으로 헤쳐나가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경영권은 유지하면서 구제금융수준의 싼이자로 은행돈을 끌어쓰기
위한 방편으로 화의신청을 악용하는 사례가 IMF사태이후 급증하고 있다.

이같은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법무부는 지난달 24일자로 화의 등
파산관련법규를 개정해 화의요건을 대폭 강화하고 이미 진행중인
화의신청건에 대해서도 개정법규를 적용하기로 했다.

당연히 화의신청이 급감하고 이미 화의신청을 한 기업도 법정관리로
바꾸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지난해 12월에 17건, 올해 1월에 13건, 2월에 11건이던 화의신청건수가
화의법이 개정된 뒤에는 단 한건도 없으며 나산 극동 등은 법정관리신청으로
방향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화의신청을 악용하지 못하도록 화의요건을 강화한
것은 지지하지만 대기업의 화의신청에 대해 일률적으로 불리하게 판정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보며 먼저 기업 은행 금융감독당국 등 경제주체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부터 방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화의제도의 긍정적인 역할이 극대화돼 외환.금융위기를 빨리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회사의 재정파탄이 부실경영이나 회사재산의 유용.은닉때문인
경우 화의신청을 기각한다는 조항은 너무나 당연하다.

재무제표를 허위로 작성해 거액의 대출을 받고 헛소문을 퍼뜨리는 등
주가조작을 통해 거액의 시세차익을 챙긴뒤 고의부도를 냄으로써
1천7백억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지난 9일 구속된 신화그룹의 이은조 회장이
화의신청을 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물론 엉터리 외부감사를 해온 회계법인, 허술한 대출심사를 한 은행의
책임도 있지만 늦게나마 경영진의 책임을 엄하게 추궁해야 한다고 본다.

같은 맥락에서 법원이 화의채권의 담보로 경영권자의 주식지분을
제공하도록 요구하는 것도 당연하다.

부도난 기업이 법정관리대신 화의를 신청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법정관리를 신청하면 대주주의 지분을 소각함으로써 부실경영의 책임을
묻는데 비해 화의신청의 경우에는 경영권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또한 법정관리를 신청한 경우에는 위험가중치가 1백%인 "추정손실"로
처리되고 인가뒤에는 위험가중치가 75%인 "회수의문"으로 처리되는데
비해 화의신청의 경우에는 위험가중치가 3%인 "요주의여신"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은행입장에서도 BIS 자기자본비율을 계산하는데 유리한 점이
작용한다.

따라서 법정관리나 화의를 막론하고 대주주나 경영진의 부실경영책임은
엄중하게 묻고 법정관리와 화의간에 부실여신처리를 지나치게 차별하지
말며 법정관리 인가때에도 최장 20년인 채권상환기간을 단축해 채권자의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

끝으로 채무자의 자산.부채규모가 크거나 이해관계인의 수가 많다는
점이외에 화의신청을 기각할 수 있는 "제반사정"이나 "부적합한 사정"을
좀더 명확히 해야 하겠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