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러머니지가 본 '한국의 외채협상'] (중) JP모건 해결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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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년12월29일 뉴욕 채권은행단 회담에서는 다른 견해들도 표출됐다.
미국 재무성은 무역관련 채무도 만기연장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
했다.
그러나 은행들은 수출입관련 채권금리는 현상을 유지하거나 90일물의 경우
최대한 리보에 6%포인트를 가산한 정도로 높이기로 결론지었다.
일부 유럽계 은행은 한국의 개별 은행과 관계를 지속하고 싶어했기 때문에
똑같이 정부보증채권을 받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닛케이지수의 하락으로 자본잠식규모가 커지고 있던 일본계 은행들은 단지
한국정부의 보증만을 받는다는 것에 대해 달가워하지 않았다.
채권의 만기연장과 새로운 자금 지원 및 가격산정을 위한 더치옥션방식 등에
대해 불만이 터져 나왔다.
JP모건과 그의 지지자만이 수정된 더치옥션방식이어서 합리적이라고 해명
했다.
한국은 정해진 금리를 받아들여지도록 의무지워지지는 않았으며 받아들일수
있는 정도까지만 받을 수 있는 선택권이 주어졌다고 강조했다.
즉 만기연장물량의 나머지를 마저 매각하기 위해 높은 금리를 제시한
마지막 입찰까지 받아들이지 않아도 되는 한국정부의 자율성이 있는 설명
이다.
29일 회의후 마침내 "한국구조계획"은 실행에 들어갔다.
<> 한국의 대응
1월초 한국은 협상팀을 구성하기 위해 애썼다.
한국정부는 골드만삭스와 살로먼브라더스 외에 전 뉴욕 연방은행 의장
이었던 제랄드 코리건을 자문역으로 초청했다.
코리건은 12월22일 임창열 부총리로부터 한국 금융시스템 개혁을 위해
방한해 달라는 초청을 받았다.
코리건은 직접협상에 참여하기를 원하지 않았고 단기처방보다는 외화유출을
막고 동시에 장기적인 금융시스템을 개혁하는데 촛점을 둬야 한다고 충고
하는데 그치려 했다.
불가피하게 한국정부는 코리건의 견해를 받아들여야 했다.
코리건은 변호사를 구해야 한다고 충고했고 클리어리 고트리브 스틴 앤드
해밀턴 법무법인에 참여하고 있던 마크 워커를 추천했다.
워커는 5일 서울을 방문해 임부총리와 토론했고 IMF와 협상중 잠시 빠져
나온 정덕구 재경원 차관보를 만났다.
그는 곧바로 로즈등을 상대하는 카운터파트너 역할에 나섰다.
1월 첫째주 한국의회는 2백억달러에 대한 정부의 보증과 1백억달러의 국채
발행을 승인했다.
이어 외채협상규모에 대한 관심이 의회로부터 표출됐다.
한국의 분위기는 이미 JP모건 계획의 세부사항을 받아들이지 않는 쪽으로
흘렀다.
1월8일 워커는 한 은행과의 비공식접촉을 위해 뉴욕으로 돌아갔다.
워커는 그들의 토론에서 무엇이 도출되든 협상을 통한 해결이 될 것이라는
점을 확신시켰다.
모건방식과 같은 시장결정방식(더치옥션방식)이 아니라 협상가격방식을
추진하겠다는 의도였다.
비슷한 시기 서울에서는 한가지 원칙이 마련됐다.
한국은 더치옥션방식의 협상에 반대하고 외채만기연장과 자금지원을 연계
하는데 반대한다는 것이었다.
한국정부가 단일팀을 구성하는 반면 채권은행들 사이는 벌어지기 시작했다.
많은 유럽계 은행들은 모건의 계획에 대해 반대하기 시작했다.
비미국계 은행들의 분노가 빗발쳤다.
일본은행들도 떠나가기 시작했다.
채권은행단은 분열상을 보였다.
사태를 수습한 것은 오로지 로즈였다.
한국정부는 로즈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고 임창열 부총리는 21일
뉴욕에서 협상이 시작되도록 주선해줄 것을 13일 그에게 요청했다.
로즈는 한국이 협상을 지속하기를 원하는 13개 주요은행 즉
뱅크오브아메리카 체이스 모건 뱅크오브노바스코티아 뱅크오브토쿄미쓰비시
산와뱅크 도이체방크 코머츠방크 웨스트LB 소시에테제네랄 HSBC
SBC워버그딜론리드 등의 조정자가 됐다.
반면 한국정부는 비미국계 은행들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워커는 일본과 유럽계 은행들과 접촉했다.
도쿄에서 워커는 일본계 은행들이 원래의 채무자인 한국 은행들과 관계를
지속하기를 원한다는 것을 발견했고 독일계 은행들은 한국 은행들에
우호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워커는 "반JP모건" 세력이 존재함을 깨달았다.
이제서야 워커와 한국정부는 뉴욕 외채협상에 임할 준비태세를 갖췄다.
정덕구 재정경제원(현 재정경제부) 차관보, 김용환 비상경제대책위원회
당선자측 대표, 유종근 대통령 당선자 경제고문 등 외채협상팀이 구성됐다.
뉴욕에서 만나게될 채권은행단이 어떤 상태이든 한국팀은 맞닥뜨릴 준비를
갖춘 것이다.
<정리=정태웅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12일자).
미국 재무성은 무역관련 채무도 만기연장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
했다.
그러나 은행들은 수출입관련 채권금리는 현상을 유지하거나 90일물의 경우
최대한 리보에 6%포인트를 가산한 정도로 높이기로 결론지었다.
일부 유럽계 은행은 한국의 개별 은행과 관계를 지속하고 싶어했기 때문에
똑같이 정부보증채권을 받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닛케이지수의 하락으로 자본잠식규모가 커지고 있던 일본계 은행들은 단지
한국정부의 보증만을 받는다는 것에 대해 달가워하지 않았다.
채권의 만기연장과 새로운 자금 지원 및 가격산정을 위한 더치옥션방식 등에
대해 불만이 터져 나왔다.
JP모건과 그의 지지자만이 수정된 더치옥션방식이어서 합리적이라고 해명
했다.
한국은 정해진 금리를 받아들여지도록 의무지워지지는 않았으며 받아들일수
있는 정도까지만 받을 수 있는 선택권이 주어졌다고 강조했다.
즉 만기연장물량의 나머지를 마저 매각하기 위해 높은 금리를 제시한
마지막 입찰까지 받아들이지 않아도 되는 한국정부의 자율성이 있는 설명
이다.
29일 회의후 마침내 "한국구조계획"은 실행에 들어갔다.
<> 한국의 대응
1월초 한국은 협상팀을 구성하기 위해 애썼다.
한국정부는 골드만삭스와 살로먼브라더스 외에 전 뉴욕 연방은행 의장
이었던 제랄드 코리건을 자문역으로 초청했다.
코리건은 12월22일 임창열 부총리로부터 한국 금융시스템 개혁을 위해
방한해 달라는 초청을 받았다.
코리건은 직접협상에 참여하기를 원하지 않았고 단기처방보다는 외화유출을
막고 동시에 장기적인 금융시스템을 개혁하는데 촛점을 둬야 한다고 충고
하는데 그치려 했다.
불가피하게 한국정부는 코리건의 견해를 받아들여야 했다.
코리건은 변호사를 구해야 한다고 충고했고 클리어리 고트리브 스틴 앤드
해밀턴 법무법인에 참여하고 있던 마크 워커를 추천했다.
워커는 5일 서울을 방문해 임부총리와 토론했고 IMF와 협상중 잠시 빠져
나온 정덕구 재경원 차관보를 만났다.
그는 곧바로 로즈등을 상대하는 카운터파트너 역할에 나섰다.
1월 첫째주 한국의회는 2백억달러에 대한 정부의 보증과 1백억달러의 국채
발행을 승인했다.
이어 외채협상규모에 대한 관심이 의회로부터 표출됐다.
한국의 분위기는 이미 JP모건 계획의 세부사항을 받아들이지 않는 쪽으로
흘렀다.
1월8일 워커는 한 은행과의 비공식접촉을 위해 뉴욕으로 돌아갔다.
워커는 그들의 토론에서 무엇이 도출되든 협상을 통한 해결이 될 것이라는
점을 확신시켰다.
모건방식과 같은 시장결정방식(더치옥션방식)이 아니라 협상가격방식을
추진하겠다는 의도였다.
비슷한 시기 서울에서는 한가지 원칙이 마련됐다.
한국은 더치옥션방식의 협상에 반대하고 외채만기연장과 자금지원을 연계
하는데 반대한다는 것이었다.
한국정부가 단일팀을 구성하는 반면 채권은행들 사이는 벌어지기 시작했다.
많은 유럽계 은행들은 모건의 계획에 대해 반대하기 시작했다.
비미국계 은행들의 분노가 빗발쳤다.
일본은행들도 떠나가기 시작했다.
채권은행단은 분열상을 보였다.
사태를 수습한 것은 오로지 로즈였다.
한국정부는 로즈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고 임창열 부총리는 21일
뉴욕에서 협상이 시작되도록 주선해줄 것을 13일 그에게 요청했다.
로즈는 한국이 협상을 지속하기를 원하는 13개 주요은행 즉
뱅크오브아메리카 체이스 모건 뱅크오브노바스코티아 뱅크오브토쿄미쓰비시
산와뱅크 도이체방크 코머츠방크 웨스트LB 소시에테제네랄 HSBC
SBC워버그딜론리드 등의 조정자가 됐다.
반면 한국정부는 비미국계 은행들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워커는 일본과 유럽계 은행들과 접촉했다.
도쿄에서 워커는 일본계 은행들이 원래의 채무자인 한국 은행들과 관계를
지속하기를 원한다는 것을 발견했고 독일계 은행들은 한국 은행들에
우호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워커는 "반JP모건" 세력이 존재함을 깨달았다.
이제서야 워커와 한국정부는 뉴욕 외채협상에 임할 준비태세를 갖췄다.
정덕구 재정경제원(현 재정경제부) 차관보, 김용환 비상경제대책위원회
당선자측 대표, 유종근 대통령 당선자 경제고문 등 외채협상팀이 구성됐다.
뉴욕에서 만나게될 채권은행단이 어떤 상태이든 한국팀은 맞닥뜨릴 준비를
갖춘 것이다.
<정리=정태웅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