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원유가격의 하락세가 계속되고 있다.

최근 국제시장의 OPEC기준유가는 배럴당 11달러대로 지난해말의
18달러대에서 40%가까이 내렸다.

일부에서는 "한자릿수 시대"가 올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다소 성급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OPEC회원국들의 갈등으로 감산협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0하고 세계수요도 계속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유가약세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결론이 내려진다.

국제유가 변화는 우리경제에 큰 영향을 미친다.

지난해 원유수입량은 8억7천3백만배럴에 달했다.

여기에 석유류제품수입까지 포함하면 전체 석유류수입은 10억배럴이 훨씬
넘는다.

금액으로는 2백억달러에 가깝다.

그렇게 따지면 올들어 하락한 배럴당 5~6달러만으로도 연간
50억~60억달러의 수입감축효과를 기대할수 있다.

특히 외환위기를 맞아 환율상승으로 물가불안이 큰 짐이 되고있는
현실에서 물가억제에도 도움이 될수있다.

때문에 국제유가하락은 일단 환영할만한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과연 좋아할 일인지, 또 그같은 저유가에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우선 석유소비감소는 세계적인 경기침체를 반영한 것에 다름아니다.

사실 외환위기를 겪고있는 동남아는 물론 일본과 유럽등 세계각국의
경기침체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미국이 다소 예외이기는 하지만 석유수입감소로 중동산유국들의 경제마저
내리막길로 접어들 것으로 가정한다면 자칫 세계적인 디플레현상이 올
우려가 있다.

대외의존적 경제구조를 갖고있는 우리로서는 그같은 세계적 불황에 직면할
경우 수출부진을 면치못할 것이고 IMF체제를 벗어나는 일도 그만큼 더뎌질
것이다.

환율상승등으로 그 어느때보다 수출의 가격경쟁력이 높은 상황에서
수출증가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것도 그같은 영향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가격하락만을 반겨할 것이 아니라 수요위축이 의미하는 바를 좀더
주의깊게 살펴보고 이에 대비하는 전략도 검토해보아야 할 것이다.

이와는 다른 관점에서 국내가격정책도 재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석유류가격은 국제유가에 연동돼있다.

때문에 국제유가가 내리면 국내유가도 얼마간 인하된다.

그러나 그게 꼭 바람직한지는 생각해보아야 한다.

우리의 석유류 소비절약은 아직도 멀었다.

더구나 산업구조는 에너지 다소비형구조로 돼있고 에너지효율마저
선진국에 비해서는 형편없이 낮은 수준이다.

이를 개선하지 못하면 산업의 국제경쟁력강화도 어렵고 IMF체제의
극복도 지연될 소지가 많다.

그런 점에서 당분간 고유가 정책의 유지가 바람직하다.

국제가격 하락을 국내유가인하로 반영치않고 그 차액을 기금등으로 확보해
산업구조개선사업에 활용하거나 최근 논의되고 있는 실업자 구제사업의
재원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한번 진지하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유가하락을 무작정 반겨할 일만은 아니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