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구의 중소기업 이야기] (47) '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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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진기계다이아의 방종오(40)사장은 최근 일본의 히라이철공소에
유리천공기를 납품했다.
납품금액은 4천5백만원.
그런데 대금을 받고보니 현금이 아닌 6개월짜리 어음이었다.
일본기업도 어음을 준다는 얘기를 듣긴 했지만 이렇게 장기어음을
끊어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어음을 현금화할 일이 아득했다.
그래서 히라이측에 어디서 어음을 할인받을 수 있는지 물어봤다.
히라이의 자금담당부장은 "한국내 일본은행이면 어디서든 가능하다"고
대답했다.
방사장은 어음을 할인받으러 가서 또 한번 놀랐다.
할인율이 연 2%에 지나지 않았던 것.
6개월짜리 어음이니까 1%만 떼고 즉시 현금화할 수 있었다.
그뒤 방사장은 국내업체에 공구를 납품하고 4개월짜리 어음을 받았다.
이를 할인하기 위해 거래은행을 찾아갔으나 퇴짜를 맞았다.
하는 수 없이 역삼동 사채업자를 찾았다.
그곳에선 연 40%의 할인율을 요구했다.
이때 방사장은 일본과 우리의 어음거래여건이 너무나 다른 점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한다.
사실 우리의 할인율은 은행에서도 무척이나 높다.
서울은행이 22%, 기업은행 18.5%, 조흥은행 16%정도로 일본보다 평균
10배나 더 높다.
은행을 통해 발행하는 방식의 어음제도는 본래 일제때 일본에서 들어온 것.
그러나 지금은 방사장이 겪은 것처럼 일본과는 너무나 달라져버렸다.
현금이동의 위험을 덜고 환전의 불편을 줄이기 위해 시작된 어음제도가
오히려 불편한 제도가 돼버렸다.
어음은 12세기경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지중해연안에서 처음 등장했으나
우리나라에선 15세기초인 조선 태종때부터 어음이란 이름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이때 어음이란 용어는 어험에서 나왔다고 한다.
어험이란 고기의 지느러미를 대조해본다는 뜻.
어음을 작성, 서명날인한 뒤 그 종이를 찢어나눴다가 확실히 진짜인지를
알아볼 때 찢어진 부분을 맞춰보면 판단할 수 있었던 것에서 출발한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어음제도도 뿌리가 깊은 금융거래방식이다.
덕분에 전세계에서 가장 어음거래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가 되긴 했다.
현재 우리는 기업간 거래대금의 80%이상을 어음으로 주고 받지만
어음제도가 발전하기는 커녕 골치거리로 바뀌어버렸다.
연쇄부도의 가장 큰 원인이 된데다 기업간 거래분쟁의 불씨가 되고 있다.
왜 이렇게 됐을까.
이는 "어음을 신용수단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자금난 전가를 위해
활용하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지난 한햇동안 국내 중소기업중 어음을 잘못받아 부도를 당한 기업은
적어도 4천5백개사에 이른다.
경영과실이 아니라 어음종이 하나 잘못받은 탓에 회사문을 닫은사람이
이렇게 많다.
이제 이런 제도는 전면적으로 검토를 할 때가 됐다.
일부업계에선 어음제도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어음할인율이 제품마진율보다 몇배나 높은 상황에선 어음제도 폐지론에도
귀를 기울여봄직하지 않을까.
일본에서조차 쓰지않는 일제시대의 어음제도는 벗어던져버려야 할 때가
왔다.
기업들끼리 서로 완벽한 신용으로 발행하는 어험 제도를 도입해야 할때다.
<중소기업 전문기자>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13일자).
유리천공기를 납품했다.
납품금액은 4천5백만원.
그런데 대금을 받고보니 현금이 아닌 6개월짜리 어음이었다.
일본기업도 어음을 준다는 얘기를 듣긴 했지만 이렇게 장기어음을
끊어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어음을 현금화할 일이 아득했다.
그래서 히라이측에 어디서 어음을 할인받을 수 있는지 물어봤다.
히라이의 자금담당부장은 "한국내 일본은행이면 어디서든 가능하다"고
대답했다.
방사장은 어음을 할인받으러 가서 또 한번 놀랐다.
할인율이 연 2%에 지나지 않았던 것.
6개월짜리 어음이니까 1%만 떼고 즉시 현금화할 수 있었다.
그뒤 방사장은 국내업체에 공구를 납품하고 4개월짜리 어음을 받았다.
이를 할인하기 위해 거래은행을 찾아갔으나 퇴짜를 맞았다.
하는 수 없이 역삼동 사채업자를 찾았다.
그곳에선 연 40%의 할인율을 요구했다.
이때 방사장은 일본과 우리의 어음거래여건이 너무나 다른 점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한다.
사실 우리의 할인율은 은행에서도 무척이나 높다.
서울은행이 22%, 기업은행 18.5%, 조흥은행 16%정도로 일본보다 평균
10배나 더 높다.
은행을 통해 발행하는 방식의 어음제도는 본래 일제때 일본에서 들어온 것.
그러나 지금은 방사장이 겪은 것처럼 일본과는 너무나 달라져버렸다.
현금이동의 위험을 덜고 환전의 불편을 줄이기 위해 시작된 어음제도가
오히려 불편한 제도가 돼버렸다.
어음은 12세기경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지중해연안에서 처음 등장했으나
우리나라에선 15세기초인 조선 태종때부터 어음이란 이름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이때 어음이란 용어는 어험에서 나왔다고 한다.
어험이란 고기의 지느러미를 대조해본다는 뜻.
어음을 작성, 서명날인한 뒤 그 종이를 찢어나눴다가 확실히 진짜인지를
알아볼 때 찢어진 부분을 맞춰보면 판단할 수 있었던 것에서 출발한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어음제도도 뿌리가 깊은 금융거래방식이다.
덕분에 전세계에서 가장 어음거래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가 되긴 했다.
현재 우리는 기업간 거래대금의 80%이상을 어음으로 주고 받지만
어음제도가 발전하기는 커녕 골치거리로 바뀌어버렸다.
연쇄부도의 가장 큰 원인이 된데다 기업간 거래분쟁의 불씨가 되고 있다.
왜 이렇게 됐을까.
이는 "어음을 신용수단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자금난 전가를 위해
활용하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지난 한햇동안 국내 중소기업중 어음을 잘못받아 부도를 당한 기업은
적어도 4천5백개사에 이른다.
경영과실이 아니라 어음종이 하나 잘못받은 탓에 회사문을 닫은사람이
이렇게 많다.
이제 이런 제도는 전면적으로 검토를 할 때가 됐다.
일부업계에선 어음제도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어음할인율이 제품마진율보다 몇배나 높은 상황에선 어음제도 폐지론에도
귀를 기울여봄직하지 않을까.
일본에서조차 쓰지않는 일제시대의 어음제도는 벗어던져버려야 할 때가
왔다.
기업들끼리 서로 완벽한 신용으로 발행하는 어험 제도를 도입해야 할때다.
<중소기업 전문기자>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