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정치 경제 사회를 "죽의 장막"에 비유했던 적이 있었다.

개방을 표방하고 시장경제체제를 다지고 있다지만 아직까지도 그 실체를
투명하게 들여다 볼 수 없는 나라가 중국이다.

중국 대기업들의 경영전략과 사업활동에 대해선 더욱 그렇다.

마침 중국의 대기업그룹이 글로벌 경영을 선언하면서 외국 언론에 "경영"을
공개했다.

세계 냉장고 시장을 노리며 비약하고 있는 커롱그룹이다.

본사의 베이징 특파원이 광둥성 광저우에 있는 커롱그룹을 찾아가 전반적인
경영 현황과 중국 기업의 독특한 문화인 사내 공산당원 활동을 알아봤다.

<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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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냉장고시장에서 확고한 입지를 굳힌뒤 전세계 냉장고 시장에
도전한다"

7년째 중국냉장고 시장점유율 1위(97년 18.0%)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커롱그룹이 내건 해외시장진출 슬로건이다.

자국시장을 석권하면 해외시장 경쟁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믿음이 짙게
깔려 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냉장고 하나에 승부를 건다는 다부진 각오다.

중국 소비자들에게 "커롱"은 몰라도 그룹의 냉장고 브랜드 "롱성"은
고유명사처럼 사용되게 한다는 구상이다.

커롱그룹은 그래서 여러가지 제품에 손대지 않는다.

중국시장에 진출한 내로라하는 전세계 냉장고들과 경쟁해 이길 제품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판닝 커롱그룹회장은 "이런저런 사업에 뛰어드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며
"주력상품인 냉장고를 세계 최고수준으로 만든뒤 제2, 제3의 제품을
개발해도 늦지 않다"고 잘라 말한다.

커롱그룹의 국제화 전략은 내수시장을 발판으로 세계시장을 개척하는 것.

연산 2백만대의 냉장고 생산시설을 갖춘 커롱그룹은 중국 내륙시장의
거점인 청두와 랴오닝성 잉커우에 각각 연산 50만대 규모의 냉장고
생산공장을 건설중이다.

청두와 잉커우의 생산법인이 본격 가동되는 올연말쯤에는 내수시장
점유율이 25% 수준에 달할것으로 커롱그룹은 내다보고 있다.

커롱그룹의 내수시장 "굳히기 전략"은 해외시장 진출계획과 맞물려 있다.

자국 시장에서 외국업체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면서 일본에 기술연구소를
세웠다.

국제수준의 가전제품 디자인 기술을 벤치마킹하고 첨단제품개발과
기술정보를 수집하기위해 일본에 전략거점을 둔 것이다.

또 지난해초에는 홍콩증권시장에도 상장했다.

국제시장에 본격 진출하기 위해서는 홍콩증시 상장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커롱그룹의 세계화 전략은 본사를 광저우에서 홍콩으로 옮김으로써 더욱
확실해졌다.

이 그룹은 지난 84년 창사 이후 광저우에 유지해온 본사를 올해초 홍콩으로
이전했다.

국제수준의 냉장고생산회사들과 본격적인 경쟁을 벌이겠다는 의지를 내외에
천명한 것이다.

중국시장에서 외국업체들과 경쟁한 경험을 토대로 동남아 저가제품시장부터
단계적으로 먹어들어가겠다는 구상이다.

자국시장에서 소비자의 인지도를 얻은 제품이면 동남아시장이나 남미
아프리카지역에서도 먹혀들 것이라는 판단이다.

커롱그룹의 또다른 해외 틈새시장진출 전략은 가격경쟁력 확보다.

이 그룹은 기술수준과 애프터서비스의 질 향상 못지 않게 인건비 절감을
통한 가격경쟁력 제고에 힘쓰고 있다.

이 그룹 8천6백여명 종업원의 1인당 월평균 임금은 1천5백위앤(한화
30만원상당)수준.

이런 인건비지출이라도 절감하기위해 30대의 로봇을 생산라인에 설치했다.

경영관리의 현대화도 커롱그룹이 중점을 두고 추진하는 분야.

재무관리를 투명하게 하기위해 국제수준의 회계제도를 도입했다.

또 생산현장에서 개선해야 할 3백65종의 과제를 선정해 현재 70%를 고쳤다.

타성에 젖기쉬운 근로자들을 상대로 연간 10시간 이상의 직무교육을 시키는
것도 중국기업에서 찾기 힘든 사례다.

커롱그룹측은 "이제 더 이상의 철밥통은 통하지 않는다.

각자의 노력으로 생존해 나가야 한다"는 큼지막한 구호를 사내에 내걸었다.

한번 취직하면 죽을때까지 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는 "철밥통식" 사회주의
사고를 버려야 한다는 취지다.

커롱그룹은 올하반기부터 일본시장에 대당 30만위앤(한화 60만원상당)짜리
냉장고를 선보인 뒤 내년부터는 한국 태국 홍콩 미국 영국등지로 수출지역을
확대할 계획이다.

현재까지는 커롱그룹의 이같은 세계시장 진출전략이 먹혀들고 있는것처럼
보인다.

해외소비자들로부터 "선진국 제품에 못지 않다"는 평가를 받을지 여부가
"커롱의 야망"을 실현시키는 관건이 되겠지만...

< 광저우=김영근 특파원 >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