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대독직 파문으로 국내외의 비난을 받던 일본은행이 드디어 대수술을
받게 됐다.

"금융계의 황제"로 군림하던 일은도 빅뱅을 맞게 된 것이다.

총재가 재계출신인사로 바뀐 것은 말할 것도 없고 2명의 부총재중 한명도
언론계 출신에게 자리를 내주게 됐다.

부총재중 한자리를 겨우 일본은행 내부인사로 건진 것이 고작이다.

더이상 규제와 접대라는 악순환을 용납할 수 없다는 국내외의 여론이 일은
지휘부 경질로 현실화된 것이다.

대장성차관과 일은부총재가 5년씩 번갈아가며 총재자리를 나눠먹던 "관행"
이 30년만에 깨지게 됐다.

그동안 금융행정을 둘러싼 일본의 체제는 국제금융계에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부패구조"로 지목돼 왔다.

일본은행 간부가 시중은행 총재를 맡고 시중은행은 일본은행에 정보제공을
대가로 접대하는게 제도화돼 있었다.

최근 구속된 일은 영업국 과장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절대 외부에
누설해서는 안되는 기밀정보를 이익집단에 흘려주고 향응을 받는게 당연시돼
왔었다.

급기야 조사를 받던 간부가 자살하는 지경에 이를 정도였다.

하시모토 총리는 이같은 부패사슬을 단절하고 금융정책 및 제도의 의사
결정과 집행과정을 투명하게 바꿔야 된다는 부담감에 시달려왔다.

일본 국내금융계는 물론 국제사회에서 납득할 수 있는 개혁성 인사로
바꾸는 동시에 금융을 아는 인물로 총재를 선임해야 된다는 부담이 그것이다.

결국 일본은행에서 출발, 국제금융 등을 거친 일은출신 인사이면서 동시에
재계의 요구를 잘아는 인물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전문지식과 개혁성향을 동시에 충족시키려는 시도인 셈이다.

하시모토 정부의 개혁의지는 부총재중 한명을 "금융과는 거리가 먼"
언론인으로 뽑은데서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지식보다는 변화를 추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일은 개혁은 수뇌부의 경질로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일본 검찰의 수사는 확대일로에 있고 접대독직 파문에 대한 국민여론은
이 정도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새 수뇌부의 경질은 중견간부는 물론 하위직으로까지 확산될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30년만의 변화가 어떻게 구체화될 지 일본과 세계의 금융계는 주시하고
있다.

< 도쿄=김경식 특파원 >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