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 차기 전경련회장이 제시한 연간 경상수지 흑자 5백억달러
목표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국가가 지향해야 할 목표를 경제현장사정에
밝은 재계지도자가 구체적인 수치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숫자란 흔히 "숫자놀음"이라는 말이 의미하듯 공허한 뜻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지만 막연하고도 추상적인 비전이나 기대 따위를 구체적
숫자로 표시할 경우, 그 실체를 보다 실감나게 이해할수 있게 해준다.

김회장이 제시한 5백억달러 목표만 해도 그렇다.

이 목표는 단군이래 최대 호황이라던 88년 1백42억달러 흑자의 3.5배에
달하는 규모다.

지나치게 의욕적이라는 시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 1~2월중 무역수지 흑자가 47억달러에 달하고 한국개발연구원
(KDI)이 올해 경상수지 흑자 전망치를 2백53억달러로 상향조정하는 등
고무적인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어 잘만하면 목표달성이 불가능하지만은
않다고 본다.

불요불급한 시험설비와 장비수입만 줄여도 3백억~5백억달러의 무역흑자를
낼수 있다는 김회장의 설명을 들어보면 목표의 달성은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일 수도 있다.

재계는 김회장의 비전제시에 적극 호응해 10대 그룹이 올해 수출목표를
20% 정도 상향조정하는 구체적인 실천프로그램을 이번주내에 마련할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경제살리기와 기업살리기의 방법은 수출확대 밖에 없다는 재계의
인식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연간 외채이자 상환액만도 1백억달러가 넘는 상황을 감안하면 획기적인
경상수지 흑자 방안이 마련되지 않고서는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단기외채를 중-장기로 전환하는데 성공해 일단 급한 불은 껐다고는
하지만 이것으로 외환위기가 해결됐다고 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시아 경제위기에 대한 워싱턴 포스트의 지적대로 아직 최악의 상태는
시작되지 않았다고 할수 있다.

산업생산 둔화와 물가불안에 대규모 실업사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어 환율이 안정된다 해도 앞으로 더욱 고통스런 과정을 거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제 재계가 수출증대를 위해 모든 역량을 결집하겠다고 나선 이상 정부도
이에 적극 호응하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수출 많이 하는 기업주가 애국자이며 이런 사람들이
대접받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누누이 강조해왔다.

그러나 새정부 들어서도 수출및 경상수지대책은 말만 요란했지
수출현장과는 동떨어진채 겉돌고 있는 느낌이다.

정부는 재계가 보여주고 있는 수출의욕을 북돋우기 위해 각종 규제완화
조치와 함께 금융 세제 토지 원자재 등 모든 수출관련분야를 망라한
종합적인 수출활성화 방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특히 대기업 규제 등 기업활동에 대한 규제적 요소를 제거함으로써
기업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고 효율적인 시장경쟁질서를 확립해야 한다.

아울러 신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대기업정책도 수출증대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완급을 가려 신축성있게 운용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