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민칼럼] 자율과 책임의 한계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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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사태이후 우리경제의 위기원인을 도덕적 해이(Moral Hazard)에서
구하는 분석들이 부쩍 많아졌다.
"도덕적 해이"란 원래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 또는 보험수취인이 당연히
이행해야 할 예방조치를 부주의 또는 고의로 회피함으로써 보험사고를
일으킬 수 있는 위험을 말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신의성실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뜻으로 통용된다.
지난 2월말의 은행주주총회 결과를 놓고 도덕적 해이에 대한 논란이 적지
않다.
부실경영의 책임을 져야 할 은행장들이 물러나기는 커녕 재선임되는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정부와 정치권에서 그에 대한 불만이 터져나왔다.
"자율에 맡겨놓았더니 이 모양이냐" 급기야 지난 16일 재경부의 업무보고
과정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그에 관한 공개적인 질책이 있었다.
이규성 재경부장관에 대한 질문형식으로 나온 김대통령의 질책은 금융권에
충격을 줄만큼 강경한 내용이었다.
"은행장선출을 자율에 맡겼는데 성공적이지 못했다. 은행 부실책임자를
다시 선출했다. 그것도 문제지만 중대한 개혁시점에서 이나라 금융과 기업
개혁의 중대역할을 담당할 어떤 결의나 청사진이 없다. 재경부는 은행을
어떤 방향으로 협조하고 지도할 것인가"
사실 국민 입장에서 보아도 요즈음 금융들의 개혁의지는 그다지 단호해
보이지 않는다.
자금난 해소보다 자기보호에 급급하고 수수료챙기기에 여념이 없다는
표현이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때문에 IMF시대의 위기상황에서 국정을 이끌어가야 하는 대통령의 입장에서
보면 무척 답답하고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대통령의 공개질책이 터져나오고 있는 상황이고 보면 경영실적이
부실한 은행장들이 그대로 버티기는 어려울듯 싶다.
정책당국은 오는 4월말까지 제출토록 돼있는 경영개선계획을 심사해
제대로 돼있지 않으면 문책을 요구할 것이라고 한다.
자진사퇴하는 행장도 생길 것이라는 얘기들도 나온다.
그러나 여기서 함께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은행장 또는 은행의 도덕적
해이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과연 그런 방법과 절차가 적절한가 하는 점이다.
자칫 금융자율화를 최대의 선으로 꼽는 새정부의 정책방향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으로 논리적인 자기모순에 빠질 우려가 크다.
주총을 앞두고 은행인사에 절대 간여하지 않겠다는 대통령의 사전지시는
무엇이었고, 그 결과에 대해 잘못됐다는 평가는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은행장에 대한 책임추궁이 꼭 필요하더라도 그것은 제도적으로 해결할
일이다.
또 금융권에서 반론을 제기하듯이 그것은 과거의 관치와 다를게 없다.
제도가 잘못 됐으면 그것을 고쳐야 하는 것이 순리다.
관치금융을 없애기 위해 은행장선출 제도를 바꾼 것도 한두번이 아니다.
정부내정을 바로잡기 위해 지난 93년 추천위원회제도를 도입했고, 지난해
에는 비상임이사중심의 이사회에서 선출토록 했다.
올들어서는 비상임이사의 공익대표 비중을 높이는 조치도 취했다.
그러나 결과는 별로 달라진게 없다.
은행의 지배주주를 인정하지않는 현행제도 아래서는 자율적 선임이란
별다른 의미를 갖기가 어렵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정부의 입김이 먹혀들 수 밖에 없다는 얘기도 된다.
진정한 자율경영이 이뤄지려면 책임경영을 할 수 있는 지배주주의 허용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그래서 나온다.
우리경제체질로 보아 지배주주의 허용이 시기상조라고 판단된다면 차라리
정부가 떳떳하게 나서서 은행인사에 개입하는 것이 오히려 논리적 타당성을
갖는게 아니냐는 생각마저 해본다.
가장 객관적이고 중립성을 가진 공익기관은 정부라는 판단에서다.
새로운 질서를 구축해나가는 것은 법과 제도를 통하는 것만이 진정한
변화다.
우격다짐으로 이뤄질 경우 언젠가는 궤도를 이탈하게 된다.
은행의 책임경영체제도 가능하면 스스로 개혁해나갈 수 있는 역량과
자질을 키워나가는데 중점이 두어져야 할 것이다.
명분은 충분하다 하더라도 형식과 절차에서 합리성이 결여되면 다음에
들어오는 은행장은 또 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새로운 관치와 도덕적
해이를 구축해나갈 것은 분명하다.
더구나 그같은 문제는 비단 은행에 국한된 얘기만은 아니라는 점에서
신중한 대응이 필요하다.
기업의 구조조정문제도 상황은 비슷하다.
얽히고 설킨 현실의 매듭을 풀어나가기란 생각만큼 쉽지 않기 때문에
기업이나 은행의 개혁이 정책당국자들이 생각하는 만큼 시원스레 이뤄지기는
힘들 것이다.
새정부 정책에 대해 걱정스럽게 느껴지는 부분은 바로 이 대목이다.
기대대로 이뤄지지 못할 경우 직접개입에 나서는게 아니냐는 우려다.
경제활동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 자연법칙이 그대로 적용된다.
환경이 바뀌면 모든 경제주체들은 그에 적응하는 변화를 시도하게
마련이다.
다만 어느정도의 적응기간은 필요할 것이다.
정부는 자율과 책임의 한계를 분명히 해주고 자생적 변화를 채찍질하는
유도정책을 근간으로 해야 한다.
여기서 정부가 지켜야할 가장 중요한 것은 일관성을 유지하는 일이다.
그래야만 원하는 방향의 적응이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18일자).
구하는 분석들이 부쩍 많아졌다.
"도덕적 해이"란 원래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 또는 보험수취인이 당연히
이행해야 할 예방조치를 부주의 또는 고의로 회피함으로써 보험사고를
일으킬 수 있는 위험을 말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신의성실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뜻으로 통용된다.
지난 2월말의 은행주주총회 결과를 놓고 도덕적 해이에 대한 논란이 적지
않다.
부실경영의 책임을 져야 할 은행장들이 물러나기는 커녕 재선임되는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정부와 정치권에서 그에 대한 불만이 터져나왔다.
"자율에 맡겨놓았더니 이 모양이냐" 급기야 지난 16일 재경부의 업무보고
과정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그에 관한 공개적인 질책이 있었다.
이규성 재경부장관에 대한 질문형식으로 나온 김대통령의 질책은 금융권에
충격을 줄만큼 강경한 내용이었다.
"은행장선출을 자율에 맡겼는데 성공적이지 못했다. 은행 부실책임자를
다시 선출했다. 그것도 문제지만 중대한 개혁시점에서 이나라 금융과 기업
개혁의 중대역할을 담당할 어떤 결의나 청사진이 없다. 재경부는 은행을
어떤 방향으로 협조하고 지도할 것인가"
사실 국민 입장에서 보아도 요즈음 금융들의 개혁의지는 그다지 단호해
보이지 않는다.
자금난 해소보다 자기보호에 급급하고 수수료챙기기에 여념이 없다는
표현이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때문에 IMF시대의 위기상황에서 국정을 이끌어가야 하는 대통령의 입장에서
보면 무척 답답하고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대통령의 공개질책이 터져나오고 있는 상황이고 보면 경영실적이
부실한 은행장들이 그대로 버티기는 어려울듯 싶다.
정책당국은 오는 4월말까지 제출토록 돼있는 경영개선계획을 심사해
제대로 돼있지 않으면 문책을 요구할 것이라고 한다.
자진사퇴하는 행장도 생길 것이라는 얘기들도 나온다.
그러나 여기서 함께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은행장 또는 은행의 도덕적
해이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과연 그런 방법과 절차가 적절한가 하는 점이다.
자칫 금융자율화를 최대의 선으로 꼽는 새정부의 정책방향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으로 논리적인 자기모순에 빠질 우려가 크다.
주총을 앞두고 은행인사에 절대 간여하지 않겠다는 대통령의 사전지시는
무엇이었고, 그 결과에 대해 잘못됐다는 평가는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은행장에 대한 책임추궁이 꼭 필요하더라도 그것은 제도적으로 해결할
일이다.
또 금융권에서 반론을 제기하듯이 그것은 과거의 관치와 다를게 없다.
제도가 잘못 됐으면 그것을 고쳐야 하는 것이 순리다.
관치금융을 없애기 위해 은행장선출 제도를 바꾼 것도 한두번이 아니다.
정부내정을 바로잡기 위해 지난 93년 추천위원회제도를 도입했고, 지난해
에는 비상임이사중심의 이사회에서 선출토록 했다.
올들어서는 비상임이사의 공익대표 비중을 높이는 조치도 취했다.
그러나 결과는 별로 달라진게 없다.
은행의 지배주주를 인정하지않는 현행제도 아래서는 자율적 선임이란
별다른 의미를 갖기가 어렵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정부의 입김이 먹혀들 수 밖에 없다는 얘기도 된다.
진정한 자율경영이 이뤄지려면 책임경영을 할 수 있는 지배주주의 허용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그래서 나온다.
우리경제체질로 보아 지배주주의 허용이 시기상조라고 판단된다면 차라리
정부가 떳떳하게 나서서 은행인사에 개입하는 것이 오히려 논리적 타당성을
갖는게 아니냐는 생각마저 해본다.
가장 객관적이고 중립성을 가진 공익기관은 정부라는 판단에서다.
새로운 질서를 구축해나가는 것은 법과 제도를 통하는 것만이 진정한
변화다.
우격다짐으로 이뤄질 경우 언젠가는 궤도를 이탈하게 된다.
은행의 책임경영체제도 가능하면 스스로 개혁해나갈 수 있는 역량과
자질을 키워나가는데 중점이 두어져야 할 것이다.
명분은 충분하다 하더라도 형식과 절차에서 합리성이 결여되면 다음에
들어오는 은행장은 또 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새로운 관치와 도덕적
해이를 구축해나갈 것은 분명하다.
더구나 그같은 문제는 비단 은행에 국한된 얘기만은 아니라는 점에서
신중한 대응이 필요하다.
기업의 구조조정문제도 상황은 비슷하다.
얽히고 설킨 현실의 매듭을 풀어나가기란 생각만큼 쉽지 않기 때문에
기업이나 은행의 개혁이 정책당국자들이 생각하는 만큼 시원스레 이뤄지기는
힘들 것이다.
새정부 정책에 대해 걱정스럽게 느껴지는 부분은 바로 이 대목이다.
기대대로 이뤄지지 못할 경우 직접개입에 나서는게 아니냐는 우려다.
경제활동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 자연법칙이 그대로 적용된다.
환경이 바뀌면 모든 경제주체들은 그에 적응하는 변화를 시도하게
마련이다.
다만 어느정도의 적응기간은 필요할 것이다.
정부는 자율과 책임의 한계를 분명히 해주고 자생적 변화를 채찍질하는
유도정책을 근간으로 해야 한다.
여기서 정부가 지켜야할 가장 중요한 것은 일관성을 유지하는 일이다.
그래야만 원하는 방향의 적응이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