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프랑스 대통령 퐁피두는 "프랑스어의 바른 사용법"이란 저서에서
"탱커(유조선)"를 "나비에르 시테르느(물이나 기름을 넣는 통)"로, "점보
제트기"를 "그로포르터(거대한 운반기)"로 고쳐서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국어를 국가의 가장 중요한 지적산물로 믿고 있기 때문에 불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반드시 불어를 사용해야하며 영어를 써서는 절대로 안된다는
프랑스의 대통령다운 발상에서 나온 주장이다.

지금도 프랑글레(불영혼종어)나 외국어를 쓰면 벌금을 내야하는
"불어정화법"이 엄존해 있고, 낱말 하나라도 "아카데미 프랑세스(프랑스
학술원)"를 통과하지 않으면 함부로 사용할 수 없도록 되어 있는 것이
프랑스라는 것을 생각하면 더 이해가 쉬워진다.

프랑스어가 라틴어 세력에서 벗어난 것은 16세기였다.

17세기에 들어서면서 언어정리운동이 활기를 띠기 시작해 1609년께 시인
말레르보가 왕명으로 프랑스어 개량작업에 착수한다.

그리고 그의 개혁안이 국가사업으로 계승발전되어 1635년에 "아카데미
프랑세스"가 창설되기에 이른다.

1694년에는 드디어 프랑스어 사전이 간행되고 문법이 확립됐다.

프랑스는 이처럼 수백년 동안에 걸쳐 언어정리운동을 계속해 왔지만 지금도
꾸준히 언어순화운동을 계속해 오고 있다.

해방후 우리나라의 어문정책을 되돌아 보면 "정책부재"라는 말로 표현할
수 밖에 없다.

그 한 예로 한글전용이 10번, 국한문혼용이 7번이나 뒤바뀌었다.

이런 무책임한 언어정책의 결과는 재론이 필요 없다.

국립국어연구원이 이번에 다시 한글맞춤법을 대대적으로 개정한다는
소식이다.

지난 89년 3월부터 시행해온 맞춤법을 9년만에 "현실에 맞게"바꾸겠다는
것이 취지다.

"...읍니다"를 "...습니다"로 바꾼것이 채 정착되기도 전에 맞춤법을
또 개정하겠다니 외국어 범람으로 요즘 말하기 듣기 쓰기에서 역사상 가장
큰 수난의 시대를 맞고 있는 국어가 또 한번의 혼란을 겪어야 할 판이다.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큰 사전도 맞춤법이 서로 다른 두가지가 공존하고
있는것이 현실이다.

이번에는 국어학계의 어느 학파가 이긴 것인지가 더 궁금하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