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객들의 관람풍속도가 변하고 있다.

러닝타임(상영시간) 3시간 내외의 장편영화들이 잇달아 등장하며 "진지한
영화보기"가 영화계의 새흐름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영화가에서 최근 호평을 받은 작품은 대부분 장편이다.

"타이타닉"(3시간14분)을 비롯 "아미스타드"(2시간35분),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2시간18분), "LA컨피덴셜"(2시간17분) 등 어지간한 영화들은
2시간을 훌쩍 넘긴다.

이번 주말 개봉예정인 "포스트맨"도 러닝타임이 2시간57분이다.

영화의 주관객층이 "즉흥적이고 참을성없다"는 신세대인 점을 감안하면
큰 변화다.

예전같으면 상영시간이 보통 1시간40분정도였고 길어도 2시간을 넘기지
않는게 상식이었다.

상영시간은 극장의 수입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상영횟수를 한 번이라도 더 늘리는게 돈이 많이 벌리기 때문이다.

S극장의 K사장은 직접 "가위질"(편집)을 했다고 알려질 정도로 상영시간
줄이기는 우리 영화계의 관행이었다.

이처럼 고질적병폐이던 가위질이 없어진데는 작품을 원본대로 살리려는
영화팬과 감독들의 노력도 큰 몫을 했다.

영화의 작품성만 보장된다면 상영시간은 문제가 안된다는 주장이 먹혀들고
있는 것이다.

타이타닉은 2월말 개봉돼 서울에서만 75만명이 관람했다.

아미스타드는 한달만에 31만명을, LA컨피덴셜도 10여일만에 10만명을
동원했다.

UIP 이문희씨는 "영화도 하나의 예술작품인 이상 무조건 가위질을 할 수는
없다"며 "외국감독들도 자신의 작품이 편집됐다는 것을 알면 차라리 상영을
안하겠다고 거세게 반발한다"고 설명했다.

"쉰들러 리스트"를 만들었던 스티븐 스필버그가 회교국인 말레이시아정부가
영화에서 남자의 나체장면을 삭제하겠다고 하자 보이코트운동을 벌여 결국
원작을 살려낸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다.

영화매니아들이 늘어나며 관객수준이 한단계 높아진 것도 "진지한
영화보기"를 정착시키는데 한몫을 하고있다.

지난해 선보인 "제5원소"의 경우 수입사가 무턱대고 가위질을 했다가
영화팬들의 거센 항의에 부딪히는 곤욕을 치뤘다.

극장수가 늘어나고 직배영화의 시장점유율이 높아지면서 흥행의 주도권이
극장에서 영화사로 넘어가는 것도 이러한 변화를 이끌고있다.

녹색극장 기획실의 심희장씨는 "원본대로 영화를 상영하는 대신 심야나
새벽 등 사각시간대에도 영화를 추가상영하는 방식으로 손실을 벌충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화평론가 강한섭씨는 "PC통신이나 인터넷을 통한 영화정보가 넘쳐나면서
수입사나 극장이 일방적으로 영화팬을 우롱할 수 없게 됐다"며 "원작을
보호하는 성숙한 문화의식이 우리영화수준을 한단계 높여줄 것"으로
전망했다.

< 이영훈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