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한보 한라 등 3대 부실기업의 처리방향이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기아자동차는 정부가 공개입찰을 통한 매각 방침을 마련함에 따라 법정
관리개시후 제3자 매각이 확실해졌다.

한보는 포철 등 국내기업이 인수를 포기함에 따라 외국기업에 매각될
공산이 크다.

한라는 대규모 해외자금 확보에 성공함에 따라 구조조정후 자력갱생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됐다.

<>.기아자동차 처리 방향은 법정관리 이후 공개매각이다.

법정관리 개시결정이 떨어지면 산업은행은 3천2백억원의 대출금을 출자로
전환하고 나머지 은행들은 부채를 탕감해 주거나 원리금상환을 유예해 주는
수순을 밟게 된다.

다음은 감자(자본금 감축)다.

올초 입법예고된 회사정리법 파산법 화의법 등 3개 법률 개정안을 보면
부도기업의 부채가 자산을 초과할 경우 반드시 일정한 비율로 감자를 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감자는 기아자동차의 납입자본금 3천7백80억원에 대해 주식병합의 방법을
통해 이뤄진다.

기아는 감자직후 증자를 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공개매각 방침이 확정된 만큼 증자는 무의미해졌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채권단은 기아자동차의 공개매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기아를 공개입찰에 부치면 현대와 삼성이 우선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는 이미 기아를 인수하겠다고 선언했다.

삼성도 기아를 인수하겠다고 공개선언만 하지 않았을 뿐 공개입찰에
참가할 것으로 보인다.

두 회사는 기아인수에 총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대에겐 단숨에 세계 10대 기업으로 올라서는 좋은 기회다.

삼성은 여기서 지면 자동차사업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몰릴 수있다.

물론 공개입찰이 진행되면 포드를 비롯한 외국업체의 참여도 배제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기아는 외국에 넘어갈 가능성도 있다.

현대와 삼성이 외국업체와 손잡고 공동입찰에 나설 것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한보는 해외기업에 매각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다.

철강업계의 대부로 통하는 박태준 자민련 총재는 23일 전경련 사무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한보는 국제입찰에 부치는 것이 좋겠다고 대통령께 보고
했다"고 말했다.

한보를 국제입찰에 부치려는 것은 국내기업 가운데 그나마 인수여력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던 포철과 현대가 인수를 완전히 포기해 버렸기 때문이다.

포철은 한보를 인수했다가는 자칫 포철마저 부실해질 수도 있다며 말도
꺼내지 못하게 한다.

포철은 지난해 US스틸 등 외국업체에 한보철강에 대한 투자를 타진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현대도 기아자동차 인수하겠다고 나선 이상 한보인수 여력이 없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한라그룹은 대규모 해외자금 도입에 성공함으로써 자력갱생의 길로
들어섰다.

한라그룹은 미국의 투자금융회사인 로스차일드사를 통해 브리지론으로
10억달러를 들여 오기로 23일 계약을 맺었다.

한라는 이 자금으로 우선 계열사들의 기존채무를 상환하면서 재무구조
개선에 주력하게 된다.

물론 브리지론인 만큼 앞으로 한라중공업 만도기계 등 주요계열사는
로스차일드사의 주선으로 외국기업과 관계를 맺게 된다.

일단 론(대출)의 형태다.

투자자에게 CB(전환사채)를 발행해 넘겨주게 될지 DR(주식예탁증서)를
넘겨줄지, 여러가지 방안이 남아 있지만 이는 앞으로 협상해 나가야 할
부분이다.

증자를 통해 지분을 넘겨 줄 수도 있다.

투자자로는 그동안 거론돼온 업체들이 가능성이 높다.

예컨대 만도기계의 경우 미국의 델파이나 델코레미, 영국의 루카스 등이
투자자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라는 이미 계열사 캄코의 지분 50%를 독일 보쉬에 2천3백만달러에,
한라건설의 발레시아호텔을 미국 선스톤에 1천6백50만달러를 받고 각각
매각했다.

또 한라펄프의 지분 일부를 2억달러에 미국 보워터사에, 마르코폴로호텔을
미국 파나콤사에 2천3백만달러를 받고 팔 예정이다.

한라는 해외자금이 도입과 함께 철저한 구조조정에 나서 빠른 시일내
제힘으로 살아나갈 길을 찾는다는 생각이다.

<김정호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