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여신 2천5백억원이상인 대기업 그룹에 대해 은행감독원이 내년말까지
부채비율을 2백%이내로 줄이도록 지시한 것은 그 파장이 적지않을 것 같다.

당초 예고됐던 것보다 3년을 앞당기라는 이번 지시에 따라 대기업그룹들은
주거래은행과 지난달에 맺었던 재무구조약정을 한달도 채 안돼 대폭 수정해야
한다.

부동산처분 계열기업정리등을 서둘러야할 것은 물론이다.

감독원의 이번 지시는 이른바 "대기업 개혁"이 너무 늦다는 정부당국의
불만을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지난주말 박태준 자민련총재와의 주례회동에서도
재계개혁에 가시적 성과가 없다며 박총재에게 이 문제를 챙겨달라고
요청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박총재가 전경련을 방문, 대통령과 대기업그룹 총수들간 합의사항인
구조조정을 서둘도록 요청한 것만으로도 정부 여당의 재계개혁속도에
대한 불만이 적지않다는 것은 분명해진다.

그가 "화의제도는 시장논리에 맞지 않는다" "협조융자는 구시대적
관치금융의 산물이다"고 강도높게 비판하고 나선 것도 이런 제도에 편승,
한계기업을 붙들고 있으려 하지말고 개혁을 서두르라는 뜻을 강조하려는
의도라고 풀이할 수 있다.

우리는 이미 여러차례 밝힌 것처럼 대기업그룹의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데
조금도 이론이 없다.

대기업그룹 스스로의 필요때문에도 구조조정이 필지라고 본다.

문제는 그 "속도"에 대한 판단이다.

외형적으로 보면 이렇다할 가시적인 변화가 없다는 지적도 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해당 기업입장에서 보면 얘기는 상당히 달라질 수도 있다.

기조실폐지작업은 거의 모든 그룹에서 이미 완결됐고 부동산이나
계열회사처분을 위한 움직임도 상당수의 그룹에서 나타나고 있다.

팔려고 내놨으나 팔리지않아 "가시적인 성과"가 없을 뿐이라는 주장도
현재의 경제여건을 감안할 때 어느정도 이해해줄 필요가 있다.

이달말까지 빚보증 규모를 자기자본의 1백%이내로 줄여야하는 작업도
결코 간단치 않기 때문에 이래저래 대기업그룹들이 구조조정에 애를
먹고있는 것은 분명하다.

부채비율을 2백%이내로 축소하라는 지시는 그 정도의 재무구조개선은
반드시 달성해야 한다는 점에서 반론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내년말까지 현실적으로 가능할 것인지는 의문이다.

96년말 기준 대기업평균 부채비율이 3백%를 넘고, 97년말에는 더욱
높아졌다고 볼때 그렇다.

더욱이 종합상사등을 포함한 도소매업의 경우 그 비율이 4백50%선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2백%를 웃도는 계열회사를 없애라는게 과연 현실적인지
의문이다.

재무구조도 업종에 따라, 또 그 업체가 초창기 투자기간인지 아니면
과실을 거두는 성숙기인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지켜지지 못할 기준을 세워놓고 이를 지키겠다는 약속만 강요해서는 결코
일이 풀리지 않는다.

바로 그런 점에서 대기업정책도 좀더 현실감이 있어야 한다.

서둘기만 한다고 될 일은 아니니까.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