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잘나가던 한국경제가 IMF관리하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낸 경제위기는 좀처럼 해소하기 어려운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다.

외환위기로부터 시작됐지만 이것이 금융위기(자금경색)를 만들었고 이어
연쇄부도와 내수시장결빙으로 나타나는 산업조직붕괴위기가 막 진행되기
시작하고 있다.

이들은 서로 악순환할 뿐 아니라 부산물로서 자산디플레를 초래하고
금융기관부실을 가속화시킨다.

또 동남아시아와 일본경제의 침체및 불안정과 연계되면서 부작용을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다.

그런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떤 위기를 만났을 때 사회의 충격을
흡수하고 배출되는 인력이나 자산을 끌어안고 가다가 재배출하는, 저수지
역할을 할만한 부문이 보통은 있는 법인데 우리경제의 3대 기둥인 대기업
집단 금융기관 정부부문(공기업)은 한결같이 스스로의 부실을 메우기에도
힘겨운 형편이다.

그래서 경제위기의 악순환을 단절하려면 플로 개선만으로는 안되고
스톡조정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IMF프로그램은 이를 잘 반영하고
있다.

그렇다고 IMF프로그램의 수용을 거부하면 당장 외환위기를 맞을 수 있고
무조건 받아들이자니 나중에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까닭에 우리사회의
지혜짜내기가 요구되는 것이다.

핵심적 고려사항은 두가지다.

하나는 대외개방하면서 국가이익을 방어하는 진지구축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거품빼기를 위한 긴축과 구조조정을 하면서도 재기능력을 보존하고
있다가 기회를 만들어 즉시 비상을 시작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외국자본유입의 통로를 넓힌다는 뜻을 갖지만 후일 그들이 한국의
증권시장과 외환시장 기업매매시장을 교란시키고 공정거래질서를 어지럽힐
가능성이 항상 있는 만큼 만일의 불상사를 초기진압할 정도의 경제체제 즉
기관투자가육성, 외국환평형기금확충, 국제분업관점에서 본
독과점방지시스템의 구축이 필요한 것이다.

한편 긴축과 구조조정은 제대로 추진이 안되면 한국병치료의 계기를
잃게 되는 측면도 있지만 그럴수록 분명하고 세심한 프로그램이 없으면
산업계에 지나친 충격을 주어 그동안 많은 대가를 지불하고 만든 기존산업이
폐허화되고 경쟁능력상실증에 걸리거나 미래산업의 싹이 잘리는 대가를
지불할 위험이 크다.

그러므로 우선 긴축과 구조조정의 정책목표가 확인돼야 한다.

기득권세력이라고 간주되는 기업에 대한 한풀이나 질투심에 바탕을
두지 않고 소득이든 자산이든 배분보다는 생산성향상과 효율증진을 통한
국제경쟁력제고가 가장 직접적 목적이라는 인식이 확산돼야 한다.

둘째, 구조조정방식이 시장메커니즘 의존형일 수밖에 없긴하지만
정리되어지는 산업이나 기업 인력 생산시설 등의 폐기와 관련된 최후
방어선은 어디쯤인지 최소한 내정을 해두고 그 이전에 몇차례의 단계적
방어대책쯤은 갖고 있어야 할 것이다.

기업들 스스로의 구조조정은 생존차원에서 필수적이지만 모든 걸 알아서
하라면서 변할 수 있는 여건마련에 소극적이거나 시기를 놓치면
과다실업이라는 불필요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기업들이 소유하고 있는 자산의 매각은 "매수수요촉진시스템"을
만들어주지 못하는한 한참동안 실천되지 못하는데 그럴수록 비용절감이라는
수단이 동원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기업이 "관리불가능한 사회적 비용"을 빨리 줄이지 못할수록, 즉
정치개혁.행정개혁.노동개혁.금융개혁이 늦어질수록 기업들은 "관리가능한
비용"인 인건비를 줄이는 쪽으로 지나치게 의존할 수밖에 없거나 도산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그래서 이젠 부실경영자뿐 아니라 건실경영자마저 유탄을 맞아 쓰러지기
시작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셋째, 정리되는 인적.물적 자원을 최단시일내 재수집 재활용 재가공하는
체제정비와 소프트웨어개발이 급하다.

또 단순히 폐자원을 저장하는데 엄청난 재원을 투입(예:실업자구제기금)하기
보다는 그런 돈이 있으면 불필요하게 심한 구조조정이, 그것도 생산부문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게 중요하다.

정부부문의 조속한 개혁이 강조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넷째, 우리의 외환보유고확보목표가 달라져야 하고 그에따른 재정운영방식
통화관리체계의 전환이 불가피하다.

특히 2000년대초 3년간의 IMF패키지원리금상환과 언제 닥칠지 모르는
남북통일 내지 북한 구제용도의 외화자금소요는 매우 크다.

미리 축적해놓지 않으면 일이 닥쳤을 때 국내경기가 큰 침체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해결불능이 될 수 있다.

외화확보에 절대적인 역할을 할 고급제조업 핵심부품산업 수출 또는
수입대체형서비스업의 육성은 지금 시작해도 결코 빠르지 않다.

또 1~2년후 경기회복이 시작돼도 고용증대가 없는 변화
(예:국제화.정보화.소프트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