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선 <외교통상부 의전심의관>

남미대륙의 최남단에 위치한 칠레 푼타아레나스(Punta Arenas)시에 가면
아직도 국산자동차 스텔라가 주종택시로 시내 거리를 누비고 있다.

70년대 국산자동차를 사상 처음 수출한 해외시장도 남미 에콰도르이다.

자동차를 생산하는 나라에서 제조한 전기.가전제품에 대한 품질은 믿을 수
있다는 것이 이 지역 사람들의 평가이며,이 덕분에 국산 전자.가전제품이
이곳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국내 S전자제품의 상호는 오히려 Corea (한국)보다 더 잘 알려져 있어
동사제품을 일본산으로 현지인들은 오인하고 있을 정도이다.

국내경제가 IMF 관리체제를 받을 정도로 정상궤도를 이탈하고 있을 때,
국내재벌들의 무관심속에서도 우리 상품에 대한 중남미 사람들의 인식은
좋은 편으로 계속 성장해 왔다.

이는 우리공관직원, 상사주재원, 그리고 현지 교포상공인들이 삼위일체가
돼 쌓아온 노력의 결과라 본다.

현재 판매 에이전트(Sales Agent)에 의존해 시장가격에 좌우되는 미국
유럽등 선진국시장도 중요하지만, 수많은 애환을 극복하고 개척한 중남미
시장에 대한 철저한 관리와 새로운 진출도 국내 생산공장을 계속 가동시키는
데 많은 역할을 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작년도 우리의 대외무역적자가 총 84억달러인데 반하여, 중남미 시장에서는
46억달러의 흑자를 기록하였다.

중남미 시장에서의 무역흑자가 없었다면 우리의 금융위기는 더 심각했을
것이다.

특히 우리가 처음으로 개발 생산한 제품에 대해 시장성을 실험할 수 있는
곳이며, 또한 산업사이클상 적정규모의 생산시설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필요하고 다소 유행이 지난 제품도 소화시킬 수 있는 시장이다.

중남미 시장은 인구 4억7천만의 잠재력이 큰 시장으로 최근 아시아 지역이
금융위기를 겪고 있음에 반해 지난해 5.3%의 경제성장을 기록, 25년만에
최고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활성화되고 있는 중남미 시장도 지역별 특성을 살려 점차
블록화되고 있다.

남미공동시장(MERCOSUR) 안데안공동체(ANCOM) 중미공동시장(CACM)및
카리브해공동체(CARICOM)등을 구성해 역내국가들간에 무역자유화를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전미주대륙을 대상으로 오는 2005년까지 미주자유무역지대(FTAA)
창설을 추진하고 있다.

미주대륙 34개국이 단일 시장화되면 GDP 8조7천억달러, 인구 7억5천만명의
세계 최대시장이 될 것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을 비롯하여 유럽연합(EU)국가들도 정상들이
방문해 세일즈 외교를 전개하고, 적극적인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

우리도 중남미 시장에 대한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분석과 새로운 대책이
요구된다.

단기적으로 IMF관리체제를 조속히 극복하는 데도 필요한 작업이다.

중남미 시장에서 신화를 다시 세우기 위해 몇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70년대 시작된 우리의 자동차 수출이 여타 상품 수출에 큰 역할을
했다.

지금까지 제조업 위주의 단순상품수출은 어느단계에 이르면 한계가 있으니
파급효과가 큰 새로운 전략부문이 필요하다.

우리가 기술과 경쟁력을 갖고 있는 전자통신분야등 서비스분야를 고려해
봄직하다.

이미 한국통신 데이콤 등이 진출하고 있다.

좀더 전략적이고 적극적인 시장개척이 요구된다.

둘째, 중남미 시장과의 교역내용을 보면 우리산업과 상호보완성이 매우
높다.

우리는 자동차 전기.전자제품 섬유류 등을 수출하고, 우리산업에 필요한
철광석 동광 원목등 원자재를 수입하고 있다.

무역수지면에서 계속 큰폭의 흑자를 기록하고 있고 점차 무역마찰 소지도
있다.

이러한 사정을 감안, 우리능력에 적절한 상호문화교류와 협력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셋째, 스페인이외의 여타 유럽국가들로부터 지난 19세기부터 많은
이주민이 중남미 지역에 정착하여 상업기반을 구축하고, 본국과 무역에
있어 가교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도 상사 주재원으로 근무하다 현지에 정착해 무역업에 종사하는 상사
OB요원들이 많다.

이들은 스페인어 단일문화권으로 특수한 상거래 관행을 갖고 있는 중남미
시장에 대해 누구보다 정통한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가능한 지원책 마련이 요망된다.

이는 우리 재외공관이 해야 할 일이다.

정부 민간기업과 현지 상공인들을 연결하는 일을 중심으로 비록 소규모로
유지되고 있으나 재외공관의 역할은 일반 국민들의 생각보다 매우 중요하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