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달형 인물"이라는 것이 있다.

지방에 따라 김선달 정수동 방학중 태학중 정만서 등으로 불리는 이들은
곤궁한 처지를 면하려고 남을 속인다.

능력에 닿지도 않는 일을 맡고 나서거나 모르는 사람을 아는 체하는가
하면 가짜부고를 내 부의금을 거둔다.

대동강물을 파는 것은 이같은 행각중 단연 압권이다.

서도소리의 대표작 "배뱅이굿"의 엉터리박수 또한 외동딸의 혼령이라도
만나고 싶어하는 부모의 마음을 이용,거짓 넋풀이를 해주고 재물을 얻는다.

폴 뉴먼과 로버트 레드포드는 1973년작 영화 "스팅"에서 희대의
사기꾼으로 한탕 잘 챙긴다.

우리 사회에서는 요즘 대규모 사면조치로 운전면허를 재발급 받으려는
사람이 몰리자 시험을 빨리 치르게 해주겠다며 브로커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고 한다.

정상적으로 시험을 보려면 6개월이상 걸리는데 20만~30만원을 주면
1주일안에 면허증을 발급받게 해주겠다고 유혹한다는 것이다.

실제로는 운전면허 취소자 51만여명이 응시하는 만큼 학과와 기능, 도로주행
시험을 모두 치르려면 최소 60일이상 걸린다는 소식이다.

어지럽고 혼탁한 시절의 또한가지 부산물인 셈이다.

시절이 수상할수록 기승을 부리는 것이 사기꾼이다.

봉이 김선달의 속임수는 고작 밥한끼,술 한잔을 위한 것이었고 조금 큰
짓이라 해도 가진자와 잘난체 하는 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지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을 곤경에 빠트리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오늘날엔 사정이 다르다.

운전면허 시험을 빨리 보게 해주겠다는 정도는 약과다.

온가족의 생계가 걸린 퇴직금을 몽땅 가로채는 것은 물론 당장의 끼니를
위해 작은 일거리라도 얻으려는 실직자나 주부를 울렸다는 소식이 잇따르고
있다.

사기란 꼼꼼히 따져보면 분명 허황된 구석이 드러나게 마련인데도 다급한
마음이나 상식을 벗어난 욕심 때문에 당하는 수가 적지 않다.

그러나 실직상태란 일종의 무장해제 상태다.

갑작스레 무장해제된 사람은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판단력은 물론
보통때라면 당연히 지녔을 경계심을 잃어버리기 쉽다.

사기로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은 자신의 상처를 누군가에게 배가시키려 할 수
있다.

존 스타인벡의 "우울한 겨울"은 선량한 소시민이 현실의 부조리 속에서
어떻게 범죄자로 변질되는지 잘 보여준다.

소박한 성실성과 시련을 견디는 꿋꿋함이 절실하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3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