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부가 추진하는 주요 정책을 들여다보면 한가지 특징이 있다.

재원마련을 위해 대부분 채권을 발행하거나 외자를 끌어쓴다.

실업대책이 그렇고 중소기업지원이나 금융산업 구조조정도 마찬가지다.

결국 빚으로 나라살림을 꾸려간다는 얘기다.

이는 세입이 줄어들고있는데 쓸 곳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올해 세입예산을 73조8천억원으로 책정했다.

작년보다 3.3% 늘여 잡았지만 정부내에서도 목표대로 세금이 걷힐 것으로
믿는 이는 드물다.

지난 2월까지 국세징수실적은 연간목표액의 13.0%.

작년 같은기간의 진도율 16.8%에 한참 못미친다.

재경부 관계자는 "1-2월중 납기연장분 2조1천억원을 감안하더라도 지나치게
낮다.

연장분이 제대로 걷힌다는 보장도 없다"고 털어놨다.

소득세도 올해 목표치 16조5천7백억원을 채우기 어려워 보인다.

실직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상황에서 근로소득세가 제대로 걷힐
수가 없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예산청은 올하반기 예산집행 차질을 우려하고 있다.

세수가 예상만큼 들어오지않으면 순위가 늦은 사업부터 포기할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도로 항만등 사회간접자본(SOC) 건설용으로 마련된 추가경정예산
(9조7천61억원)의 80%이상이 올 상반기에 배정돼 있는 상태다.

예산청 관계자는 "만약 세수가 예상보다 부족할 경우 SOC사업을 제외한
상당부문의 정부사업이 허공에 뜰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정부는 예산외에 외부에서 빚을 얻어쓰는 구상에 골몰하고 있다.

각 부처는 이미 세계은행(IBRD) 차관자금에 눈독을 들인지 오래다.

상반기중 중소기업및 벤처기업창업 지원용으로 1조원, 무역금융지원을 위해
10억달러가 각각 배정돼 있다.

올 하반기중 들어올 예정인 50억달러를 놓고 부처마다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산업자원부가 맨먼저 나섰다.

수출업체 지원에 20억달러를 써야 한다고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못을 박았다.

사회안전망 구축을 위해 총 10조원의 재원을 마련해야할 노동부도 최소
10억달러 이상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외자사용외에 각종 채권발행도 걸핏하면 거론되고 있다.

이미 발행이 확정된 비실명형태의 고용안정채권(1조6천억원규모) 외에
당장 중소기업지원과 금융기관 구조조정을 위한 채권발행이 검토되고 있다.

이에따라 올해 신규로 발행되는 국공채(외평채 제외)는 예금보험기금채권
(12조원) 부실채권 정리기금채권(12조원) 등 줄잡아 30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이런 형태의 재원조달이 궁극적으로 국민들의 부담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올해 추경예산안에 금융기관 구조조정을 위한 재정이자부담 3조6천억원이
책정된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따라서 채권이 많이 발행될수록 장차 국민들의 세부담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에대한 대책은 별로 없어 보인다.

"근본적으로 재정이 바닥나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뾰족한 수가 없다"는게
정부의 하소연이다.

이런 양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실직자수는 갈수록 불어날 것이고 기업및 금융기관 구조조정을 위한 재정
부담도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정작 올해보다 내년도 나라살림을 더 걱정하고 있다.

<조일훈기자>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3월 2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