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의 귀중함은 건강을 잃고서야 느끼게 되고, 직장의 귀중함은 직장을
잃은 뒤에야 그 고마움을 느낀다.

그것은 건강이나 직장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 엘리자베스 큐블러-로스(Elisabeth Kubler-Ross)박사는
그의 저서 "죽음의 시간(On Death and Dying)"에서 암선고를 받은 사람들의
반응을 자세히 관찰했는데 치명적인 질환을 자각하게 되면 누구나 충격을
받으며 그후의 경과는 다음의 5단계로 진행된다고 한다.

제1단계는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났을리 없다"는 부인의 단계이다.

제2단계는 "어째서 이런 일이 나에게..." 하는 분노의 단계이다.

제3단계는 "어떻게든 자식의 결혼식날까지 살 수만 있다면..." 하는 타협
의 단계이다.

제4단계는 억울하다는 단계에 접어 들어서 처음으로 상실한 것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고 슬퍼하게 되며, 드디어 사태를 직시하고 받아들인다.

억울함의 단계에서 비탄이나 공포의 표명이 심할수록 제5단계인 수용의
단계로 쉽게 옮겨진다고 한다.

IMF한파로 인해 기업도산에 따른 실업과 구조조정 등으로 해고를 당한
사람들은 어떤 대처반응을 나타낼 것인가를 생각해 볼때, 앞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5단계 수순 즉, "내가 해고라니 말도 안돼"(부인), "방법이
공평치가 않아"(분노), "좀더 일찍 통고해 줬더라면."(타협), "열심히
일했는데 이런 취급을 받다니 슬프다"(억울), "사태가 이렇게 심각했었던가"
(수용)의 단계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유사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미국의 인재개발 컨설턴트 데이비드 노아 박사는 큐블러-로스 박사가 남긴
연구결과와 독자조사에 의하여 고용문제로 인한 사원의 정신적인 변화가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연구한 결과, 도산으로 실업자가 된다든지 정리해고
당한 사람만이 아니라 회사에 남아있는 사원도 정신적으로 상처를 입게
된다는 이른바 잔존자증후군이 나타난다는 것을 지적했다.

해고되지 않고 회사에 남아 있어도 "다음은 내 차례일는지 모르지..." 하는
생각에 결코 마음 편할리 없다는 것이다.

조기퇴직제나 명예퇴직제를 도입한 회사에서 회사를 떠나는 상사나 동료의
모습을 보며 몇년뒤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지 않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3월 2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