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드러커 교수 '아시아 위기'분석] 산업화과정 '부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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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위기를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로만 봐야할 것인가.
경영학의 세계적 권위자인 피터 드러커 교수는 아시아의 위기를
진단하면서 이같은 물음을 먼저 던진다.
그리고는 경제적 위기뿐 아니라 사회불안이 아시아 위기의 본질이라고
단언한다.
급속도로 진행된 근대화과정에서 사회 각 분야의 대립.갈등 구조가
해소되기는 커녕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는 분석이다.
아시아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가 단지 경제적인 것만이
아니라는 신선한 지적이다.
< 정리 = 장규호 기자 >
=======================================================================
근본적으로 살펴보면 아시아의 위기는 경제적 위기가 아니라 사회적
위기다.
대부분의 아시아지역은 사회적 긴장상태가 최고조에 달해있다.
유럽이 양대 세계대전으로 빠져들기전의 상황과 흡사하다.
당시 유럽은 거대한 산업혁명과 급속한 도시화로 대혼란을 겪었었다.
지금 아시아의 상황이 그때와 유사하다.
하지만 아시아의 혼란은 당시의 유럽보다 더 빠른 속도로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다.
<> 한국
내가 처음 한국을 알게 된 것은 1950년대였다.
당시 전체 인구의 80%가 농어민이었다.
일본의 우민화정책으로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도 거의 없었다.
일본의 탄압을 받지 않았던 개신교재단의 학교들만 겨우 고등교육의
명맥을 유지했었다.
기업이랄 것도 없었다.
일본이 5명이상 종업원을 고용한 기업을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은 인구의 90%가 현대화된 도시생활을 하고 있으며 높은 교육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이 모든 게 40년만에 이뤄진 것이다.
그러나 그만큼 혼란도 많이 겪었다.
특히 한국 기업인들은 근로자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었다.
회사의 경영과 재무관리도 독단적으로 처리했다.
노사분규가 많았던 것도 그래서다.
군사정권 시절엔 민주화욕구가 거세게 일어났다.
이런 것들이 사회적 긴장을 고조시켰다.
그러나 이젠 김대중 대통령의 등장으로 드디어 모든 것이 바뀌었다.
물론 한국 기업가와 노동자간에 대립의 소지는 여전히 남아있다.
<> 말레이시아
수년간에 걸친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말레이인과 화교간의 갈등구조는
뿌리깊게 남아있다.
현재 말레이인은 전체 인구의 70%, 화교는 30%를 점하고 있다.
한번은 마하티르 총리가 말레이인들을 학교에 보내게 하는 방법이
없겠느냐고 묻길래 몇몇 마을을 둘러본 적이 있었다.
시골 마을에는 바나나 코코넛 사과 돼지 닭 등 없는 게 없었다.
굳이 어렵게 일하지 않아도 식생활이 해결되는 상황이었다.
1년에 몇시간만 일해도 TV세트와 모터사이클을 충분히 살 수 있는
상황이었다.
굳이 3학년이상 학교에 다닐 필요를 느끼기 어려운 상황이었다는 얘기다.
이와 대조적으로 화교들은 미국에서 대학원을 다니기도 한다.
교육열이 대단히 높다.
말레이어뿐 아니라 영어에도 능숙하다.
그래서 그들은 말레이시아 리더들보다 더 많은 힘을 갖고 있다.
이것이 갈등을 부추기는 한 요인이 되고 있다.
<>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내 화교는 전체인구 2억명중 3%정도 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자카르타를 포함한 3대도시에서는 화교인구가 20%나 된다.
화교들은 시골에 살든 도시에 거주하든 인도네시아 정부와 수하르토에게
반감을 갖고 있다.
60년대 정권교체때 50만명의 화교가 죽음을 당했기 때문이다.
화교들이 돈을 버는데 집착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수하르토와 군부, 이슬람에 대항하기 위해 힘을 키우기 위해서다.
화교는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경제적 파워를 가진 집단중의 하나다.
그들은 가는 곳마다 경제권을 장악한다.
또 가는 곳마다 전문가집단을 형성하고 지도층그룹에 영향력을 미친다.
화교만 있는 싱가포르나 대만 홍콩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 공격의 표적이
되는 것도 이때문이다.
<> 중국
중국은 18세기이후 50여차례에 걸친 민란을 겪었다.
마오쩌둥이 이끈 마지막 혁명은 49년에 성공을 거뒀다.
그래서 이제 또다른 반란이 일어날 때가 됐다는 분석이 있다.
문제는 항상 똑같았고 지금도 그대로다.
그 문제란 땅을 잃어 갈곳 없는 농민이 넘쳐난다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일자리를 찾아 떠도는 중국 유랑민이 2억명이나 된다고 한다.
특히 중국정부가 비효율적인 국영기업체들을 본격적으로 정리할 경우
8천만~1억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거리에 나앉을 것이다.
<> 일본
아시아의 주도권은 아직도 일본이 잡고 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일본은 유럽국가와 같다.
나쁘게 말하면 19세기의 전통적인 유럽국가와 흡사하다.
이것이 바로 지금 일본이 무기력증에 빠진 이유다.
일본은 몇십년전의 오스트리아나 전성기 프랑스와 같이 관료체제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정치가들은 항상 의심을 받아왔다.
으레 무능력하다거나 부패했다는 비난을 듣는다.
단지 관료에 대해서만 신뢰를 갖고 있다.
만일 관료가 부패사건에 관련되거나 무능력하다면 사회전반에 엄청난
쇼크를 일으킨다.
일본은 지금 이런 충격에 휩싸여 있다.
지난주 대장성과 일본은행 간부가 부정혐의로 체포됐을 때의 모습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일본과 전통적인 유럽국가간의 차이는 고위관료가 퇴임후에 어떤 역할을
하는 지를 보면 안다.
유럽국가의 경우 고위관료는 퇴임후에 자신이 일하던 분야의 협회나 수출
단체에 재취업하더라도 과거에 연연하지 않는다.
일본관료는 끝까지 전직부서에 충성을 다한다.
어떤 경우에도 전직 근무처에 도전하는 일이 없다.
일본의 산업이 효율적이고 경쟁력 있다고 보는 이들은 거의 없다.
일본의 대외개방정도는 어떤 선진국과도 비교가 안된다.
전체적으로는 8%, 자동차와 전자분야는 거의 "폐쇄"나 다름없다.
한마디로 일본은 세계경제 시스템에 익숙지 않은 경제다.
대부분의 국내산업이 보호받고 있고 효율성도 크게 떨어진다.
일본이 제지산업을 개방하면 일본의 제지업계 빅3이 48시간만에 사라질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일본이 금융서비스분야 시장을 개방하면 그 즉시 외국기업이 치고 들어와
기존시장의 판도를 뒤흔드는 것도 같은 사례다.
일본은행을 가만히 살펴보면 몇십년전 오스트리아의 은행을 연상하게 한다.
요즘은 한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당시에는 4명이 하고 있었다.
전자계산기도 없었고 타자수도 믿을 수 없었던 시절과 기본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은 체제다.
물론 일본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모질다.
하룻밤사이에 입장을 1백80도 바꾸기도 한다.
10년전 달러화가 평가절하됐을 때 일본인들은 생산기지를 인건비가 적게
드는 아시아지역으로 옮겼다.
화교와 제휴관계를 맺었고 중국본토의 생산자들 못지 않게 높은 수익을
얻었다.
일본인들은 어떤 목표에 대한 공감대만 형성되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변한다.
변화를 촉발시키기 위해서도 큰 스캔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금융위기가 이런 촉매제가 될 수 있다.
지금까지는 금융시스템의 개혁을 미루어 왔다.
문제가 있지만 점진적으로 좋아지거나 잘하면 그냥 해소될 수도 있다고
기대하는 것 같다.
아시아지역에서 볼 수 있듯이 사회적 긴장상태가 고조되면 단 하나의
사건이 모든 것을 뒤엎어 버릴 수도 있다.
누구나 겪은 경험이기도 하다.
아시아의 미래를 걱정하는 것도 그래서다.
[ LA타임스 신디케이트 독점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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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력 ]]
<>1909년 오스트리아 빈 출생
<>1937년 미국 베닝턴대 철학.정치학 교수
<>1950년 뉴욕대 대학원 경영학 교수
<>1971년 클레어먼트대 사회과학.경영학 교수
<>월스트리트 저널 논설위원 및 유력 일간지 고정 기고가로 활약
<>주요저서 : "현대의 경영" "변모하는 산업사회" "미래기업"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 등 다수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3월 30일자 ).
경영학의 세계적 권위자인 피터 드러커 교수는 아시아의 위기를
진단하면서 이같은 물음을 먼저 던진다.
그리고는 경제적 위기뿐 아니라 사회불안이 아시아 위기의 본질이라고
단언한다.
급속도로 진행된 근대화과정에서 사회 각 분야의 대립.갈등 구조가
해소되기는 커녕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는 분석이다.
아시아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가 단지 경제적인 것만이
아니라는 신선한 지적이다.
< 정리 = 장규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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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적으로 살펴보면 아시아의 위기는 경제적 위기가 아니라 사회적
위기다.
대부분의 아시아지역은 사회적 긴장상태가 최고조에 달해있다.
유럽이 양대 세계대전으로 빠져들기전의 상황과 흡사하다.
당시 유럽은 거대한 산업혁명과 급속한 도시화로 대혼란을 겪었었다.
지금 아시아의 상황이 그때와 유사하다.
하지만 아시아의 혼란은 당시의 유럽보다 더 빠른 속도로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다.
<> 한국
내가 처음 한국을 알게 된 것은 1950년대였다.
당시 전체 인구의 80%가 농어민이었다.
일본의 우민화정책으로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도 거의 없었다.
일본의 탄압을 받지 않았던 개신교재단의 학교들만 겨우 고등교육의
명맥을 유지했었다.
기업이랄 것도 없었다.
일본이 5명이상 종업원을 고용한 기업을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은 인구의 90%가 현대화된 도시생활을 하고 있으며 높은 교육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이 모든 게 40년만에 이뤄진 것이다.
그러나 그만큼 혼란도 많이 겪었다.
특히 한국 기업인들은 근로자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었다.
회사의 경영과 재무관리도 독단적으로 처리했다.
노사분규가 많았던 것도 그래서다.
군사정권 시절엔 민주화욕구가 거세게 일어났다.
이런 것들이 사회적 긴장을 고조시켰다.
그러나 이젠 김대중 대통령의 등장으로 드디어 모든 것이 바뀌었다.
물론 한국 기업가와 노동자간에 대립의 소지는 여전히 남아있다.
<> 말레이시아
수년간에 걸친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말레이인과 화교간의 갈등구조는
뿌리깊게 남아있다.
현재 말레이인은 전체 인구의 70%, 화교는 30%를 점하고 있다.
한번은 마하티르 총리가 말레이인들을 학교에 보내게 하는 방법이
없겠느냐고 묻길래 몇몇 마을을 둘러본 적이 있었다.
시골 마을에는 바나나 코코넛 사과 돼지 닭 등 없는 게 없었다.
굳이 어렵게 일하지 않아도 식생활이 해결되는 상황이었다.
1년에 몇시간만 일해도 TV세트와 모터사이클을 충분히 살 수 있는
상황이었다.
굳이 3학년이상 학교에 다닐 필요를 느끼기 어려운 상황이었다는 얘기다.
이와 대조적으로 화교들은 미국에서 대학원을 다니기도 한다.
교육열이 대단히 높다.
말레이어뿐 아니라 영어에도 능숙하다.
그래서 그들은 말레이시아 리더들보다 더 많은 힘을 갖고 있다.
이것이 갈등을 부추기는 한 요인이 되고 있다.
<>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내 화교는 전체인구 2억명중 3%정도 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자카르타를 포함한 3대도시에서는 화교인구가 20%나 된다.
화교들은 시골에 살든 도시에 거주하든 인도네시아 정부와 수하르토에게
반감을 갖고 있다.
60년대 정권교체때 50만명의 화교가 죽음을 당했기 때문이다.
화교들이 돈을 버는데 집착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수하르토와 군부, 이슬람에 대항하기 위해 힘을 키우기 위해서다.
화교는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경제적 파워를 가진 집단중의 하나다.
그들은 가는 곳마다 경제권을 장악한다.
또 가는 곳마다 전문가집단을 형성하고 지도층그룹에 영향력을 미친다.
화교만 있는 싱가포르나 대만 홍콩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 공격의 표적이
되는 것도 이때문이다.
<> 중국
중국은 18세기이후 50여차례에 걸친 민란을 겪었다.
마오쩌둥이 이끈 마지막 혁명은 49년에 성공을 거뒀다.
그래서 이제 또다른 반란이 일어날 때가 됐다는 분석이 있다.
문제는 항상 똑같았고 지금도 그대로다.
그 문제란 땅을 잃어 갈곳 없는 농민이 넘쳐난다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일자리를 찾아 떠도는 중국 유랑민이 2억명이나 된다고 한다.
특히 중국정부가 비효율적인 국영기업체들을 본격적으로 정리할 경우
8천만~1억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거리에 나앉을 것이다.
<> 일본
아시아의 주도권은 아직도 일본이 잡고 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일본은 유럽국가와 같다.
나쁘게 말하면 19세기의 전통적인 유럽국가와 흡사하다.
이것이 바로 지금 일본이 무기력증에 빠진 이유다.
일본은 몇십년전의 오스트리아나 전성기 프랑스와 같이 관료체제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정치가들은 항상 의심을 받아왔다.
으레 무능력하다거나 부패했다는 비난을 듣는다.
단지 관료에 대해서만 신뢰를 갖고 있다.
만일 관료가 부패사건에 관련되거나 무능력하다면 사회전반에 엄청난
쇼크를 일으킨다.
일본은 지금 이런 충격에 휩싸여 있다.
지난주 대장성과 일본은행 간부가 부정혐의로 체포됐을 때의 모습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일본과 전통적인 유럽국가간의 차이는 고위관료가 퇴임후에 어떤 역할을
하는 지를 보면 안다.
유럽국가의 경우 고위관료는 퇴임후에 자신이 일하던 분야의 협회나 수출
단체에 재취업하더라도 과거에 연연하지 않는다.
일본관료는 끝까지 전직부서에 충성을 다한다.
어떤 경우에도 전직 근무처에 도전하는 일이 없다.
일본의 산업이 효율적이고 경쟁력 있다고 보는 이들은 거의 없다.
일본의 대외개방정도는 어떤 선진국과도 비교가 안된다.
전체적으로는 8%, 자동차와 전자분야는 거의 "폐쇄"나 다름없다.
한마디로 일본은 세계경제 시스템에 익숙지 않은 경제다.
대부분의 국내산업이 보호받고 있고 효율성도 크게 떨어진다.
일본이 제지산업을 개방하면 일본의 제지업계 빅3이 48시간만에 사라질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일본이 금융서비스분야 시장을 개방하면 그 즉시 외국기업이 치고 들어와
기존시장의 판도를 뒤흔드는 것도 같은 사례다.
일본은행을 가만히 살펴보면 몇십년전 오스트리아의 은행을 연상하게 한다.
요즘은 한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당시에는 4명이 하고 있었다.
전자계산기도 없었고 타자수도 믿을 수 없었던 시절과 기본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은 체제다.
물론 일본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모질다.
하룻밤사이에 입장을 1백80도 바꾸기도 한다.
10년전 달러화가 평가절하됐을 때 일본인들은 생산기지를 인건비가 적게
드는 아시아지역으로 옮겼다.
화교와 제휴관계를 맺었고 중국본토의 생산자들 못지 않게 높은 수익을
얻었다.
일본인들은 어떤 목표에 대한 공감대만 형성되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변한다.
변화를 촉발시키기 위해서도 큰 스캔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금융위기가 이런 촉매제가 될 수 있다.
지금까지는 금융시스템의 개혁을 미루어 왔다.
문제가 있지만 점진적으로 좋아지거나 잘하면 그냥 해소될 수도 있다고
기대하는 것 같다.
아시아지역에서 볼 수 있듯이 사회적 긴장상태가 고조되면 단 하나의
사건이 모든 것을 뒤엎어 버릴 수도 있다.
누구나 겪은 경험이기도 하다.
아시아의 미래를 걱정하는 것도 그래서다.
[ LA타임스 신디케이트 독점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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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력 ]]
<>1909년 오스트리아 빈 출생
<>1937년 미국 베닝턴대 철학.정치학 교수
<>1950년 뉴욕대 대학원 경영학 교수
<>1971년 클레어먼트대 사회과학.경영학 교수
<>월스트리트 저널 논설위원 및 유력 일간지 고정 기고가로 활약
<>주요저서 : "현대의 경영" "변모하는 산업사회" "미래기업"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 등 다수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3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