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지고 가다 늪에 빠진 나귀가 허우적거리며 울어댔다.

그러자 늪 속에 있던 개구리가 한마디 했다.

겨우 잠깐 빠졌는데도 저렇게 울어대니 우리처럼 이곳에 오래 살게 되면
어떤 소리를 낼까"(나귀와 개구리)

"굶주린 개들이 강 건너 사냥감을 잡기 위해 강물을 몽땅 마셔버리기로
했다.

개들은 짐승을 잡기는커녕 자신들이 마신 물 때문에 배가 터져 죽어버렸다"
(굶주린 개)

아동용 이솝 우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얘기다.

편자들이 유익하지 못하다고 빼버렸기 때문이다.

70년전 프랑스에서 출간된 "이솝 우화" 원본에는 이같은 내용이 포함돼
있다.

영어판으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절름발이가 된 것.

프랑스판을 완역한 "어른을 위한 이솝 우화 전집"(신현철역 문학세계사)이
출간됐다.

"감춰진 반쪽"이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셈이다.

이 책에는 "어린이들에게 부적합하다"고 제외됐던 1백50여편을 포함해
모두 3백58편이 담겨 있다.

새로 소개된 작품은 그리스.로마신화를 원형으로 한 것이 많다.

신들도 인간처럼 사랑하고 질투하며 모든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특히 동성연애자의 사랑을 다룬 "제우스 신과 수치심" 등에는 그리스
문화의 특징이 그대로 반영돼 있다.

이솝우화가 어린이 교훈집으로 둔갑한 것은 시대상황이 만들어낸 아이러니
였다.

기독교적인 경건주의가 팽배해있던 빅토리아 시대나 에드워드 시대
사람들이 이솝 우화에 윤리적인 교훈을 덧붙이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이솝이 책을 쓰면서 동물을 많이 등장시킨 것도 인간의 양면성을 냉소적
으로 표현하기 위한 의도였다.

이솝에게는 인간도 정글의 법칙에 의해 지배당하는 존재로 비쳤다.

이솝은 비현실적인 희망에 매달리기보다 고통과 불공평을 삶의 일부로
인정하고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일깨워준다.

소크라테스가 감옥에서 사형을 기다리며 이솝 우화를 시로 만들고
싶어했다는 일화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재치있고 유머가 넘치면서도 삶에 대한 통렬한 시선을 담고 있는 고전의
백미.

IMF시대를 지혜롭게 넘겨야 하는 우리에게 이솝의 충고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고두현 기자>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3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