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이사제의 도입은 참으로 혁명적인 사건이다.

그것은 일당독재 체제 아래에 있던 국가의 국회에 야당 의원이 처음
등장한 것에 비유할 만큼 획기적인 것이다.

흔히들 법인은 독재적 방식으로 운영이 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것은 엄청난 오해다.

법인이라는 개념이 창안된 배경, 그리고 그 법리를 보면 법인이란 사실
견제와 균형에 입각한 민주국가의 체제를 그 모델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고 법인의 주인은 주주이다.

국민의 권익을 국회가 대변하듯 주주의 권익은 이사회가 대변해야 한다.

국회가 대통령의 전횡을 견제하고 감독하듯이 이사회가 사장의 전횡을
감독하고 견제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 법인이다.

마치 나라를 운영할 때 행정부가 주요 사항에 대해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하듯이 법인에서도 사장은 주요 사항에 대해 이사회의 동의를 얻고 정말
중요한 사항은 국민에 해당되는 주주의 동의를 얻어야 하게 되어있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이사회에 사장의 말만 맹목적으로 쫓는 이사만 있고
소액주주나 공익을 생각하는 이사는 한명도 없다면 그것은 마치 국회에
여당 의원만 있는 일당 독재 체제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사장이 주식의 절대다수를 보유하고 있는 비공개 기업에서는 일당독재식
이사회가 용인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이 회사의 주인인 주주의 절대다수의 뜻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주주의 지분이 50%에도 훨씬 못 미치는 공개 기업의 이사회에
사장의 말만 듣는 이사들만 있다는 것은 마치 일당독재 국가가 용인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용납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우리 공개 기업에 선진국과 같이 사외 이사가 생기게 되었다는
것은 드디어 우리 공개 기업이 그 정상적인 모습을 갖게 된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런 사외이사제가 대주주인 사장 또는 회장에게 손해만 되는
것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그것은 그에게도 엄청난 이익을 가져올 수 있다.

사외이사제는 기업의 값을 올려준다.

나라가 민주국가가 될수록 국제사회에서 그 나라의 값은 올라간다.

만일 북한의 김정일 체제가 야당을 인정하는 체제로 바뀐다면 그것은
북한이라는 나라의 값을 엄청나게 올려 줄 것이다.

마찬가지로 기업이 민주화 투명화되면 투자자의 입장에서 볼때 그 기업의
가치는 올라가게 마련이다.

주가가 오르면 그 대주주는 그만큼 더 부자가 되는 것이고 기업이 자금
조달하기도 쉬워지니 기업은 더욱 잘 될 수 있는 것이다.

기업인들이 생각해야 될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기업의 가치가 더이상 전통적인 기준으로만 평가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업은 전통적으로 "자산가치"와 "수익가치"라는 두가지 기준에 의해
평가되어 왔다.

이제는 여기에 덧붙여 "투명상의 가치"가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작년 여름 외국인 투자가들이 한국 증시를 썰물 빠지듯이 빠져나갈 때
그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 한 것이있다.

한국기업은 투명성이 없어 안심하고 투자를 못하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A기업이 작년에 이익을 많이 냈다고 해서 그 회사 주식을
샀더니 어느 사이에 계열 기업에 막대한 지급보증을 해주어 회사를
빈껍데기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이다.

이렇게 믿을 수 없는 불투명한 회사에 어떻게 투자를 하겠느냐는 것이다.

사외이사제는 그 존재자체가 이러한 위험성을 견제하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앞으로 세월이 지나면서 외국의 예에서 보듯이 이 상징적인 의미가
실질적인 의미로 바뀌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한국기업 전체를 선진화시키게 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3월 31일자 ).